김 전 대통령의 일생은 우리 현대사의 질곡을 그대로 담고 있다. 그는 이 땅의 민주주의와 인권, 남북통일과 평화를 위해 항상 선봉에 서 있었다. 정치에 입문하고 어렵사리 보궐선거에서 당선됐으나 3일 만에 5ㆍ16군사쿠데타로 선서조차 못한 채 금배지를 잃는다. 그 후 중앙무대에 진출해 1971년 첫 대선 도전에 나섰으나 석패하고 긴 고난의 길에 들어서게 된다. 권위주의 군사정권에 항거해 온갖 고초를 겪었지만 독재정권과 결코 타협하지 않았다. 후보 지원유세 때 의문의 교통사고를 당하고 73년에는 일본 도쿄에서 당시 중앙정보부원들에게 납치돼 수장되기 직전 극적으로 생환됐으며 80년 '서울의 봄' 때는 신군부세력에 의해 사형선고를 받았으나 국제사회의 압력으로 감형돼 망명길에 오른다.
특히 고인이 평생을 두고 심혈을 기울인 것은 냉전체제를 극복하고 한반도의 평화 공존을 이루는 것이었다. 그는 일찍이 '4대국 한반도 평화공존론'과 '3단계 통일론'을 내세워 군사정권으로부터 '용공 정치인'으로 낙인 찍히기도 했으나 대통령 당선 후 지속적인 햇볕정책으로 분단 반세기만에 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을 일궈낸다. 남북 반목과 대결을 떨치고 평화와 공존의 시대를 여는 기반을 닦으며 남북 교류와 경제협력을 활발하게 진행시켰다. 국제사회도 한반도 긴장 완화와 한국의 민주화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해 노벨평화상을 수여한다.
그러나 험난한 그의 정치 역정처럼 흠결도 없지 않았다. 국민들의 민주화 갈망 집결체인 6ㆍ10항쟁으로 얻은 군사정권의 종식 기회를 야권 대통령후보 단일화 무산으로 미뤄야 했으며 스스로 해소하려고 부단히도 노력했던 지역감정을 되레 악화시켰다는 지적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재임 중 아들과 측근 관리에 실패해 국민의 정부 도덕성에 생채기를 낸 것도 안타까운 대목이다.
우리는 몇 달 사이에 두 분의 지도자를 잃었다. 다시 고인들의 명복을 두 손 모아 빌며 그들이 남기고간 울림을 되새긴다. 그들의 외침은 남은 자의 몫이 됐다.
@include $docRoot.'/uhtml/article_relate.php';?>
강현직 논설실장 jigkh@asiae.co.kr
<ⓒ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