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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종 서울대 교수가 말하는 '잘 사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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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성정은 기자] 평균수명 80세를 맞이한 한국인. 은퇴 후 여생만도 30년에 가깝다는 오늘날에 많은 사람들은 나이 들어 잘사는 법을 고민한다. 어떤 이는 운동을 하기도 하고, 다른 이는 전원 생활을 즐기기도 한다.

여기 나이 들어 더 잘 사는 방법을 터득한 예술가가 있어 소개한다. 어느덧 인생 2모작의 후반기를 맞은 김병종(58) 서울대 미대 교수가 그 주인공이다. 화가이자 작가인 그가 깨달은 비법은 누구나 한 가지 예술에 심취하면 인생을 즐긴다는 게 무엇인지 알게 된다는 것이다.
'바보 예수'를 10여년, '생명의 노래' 시리즈를 15년 그려온 그는 몇 년 전부터 '길 위에서'란 주제로 그림을 그려왔다. 여행을 다니면서 느낀 감성을 담아낸 '길 위에서' 작품들은 그가 말한 잘 사는 법에서의 '예술'이 어떤 의미인지를 잘 보여준다.

김 교수가 말하는 예술은 아름답고 높은 경지에 이른 작품만을 뜻하는 건 아니다. 여행가서 보고 느낀 걸 기록하는 것도 삶을 풍성하게 만드는 예술이 될 수 있다는 게 그의 말이다.

"예전에 이란, 이라크 지역을 힘들게 여행했는데 당시엔 풍경에 좀 몰두해보자는 생각으로 아무 것도 기록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랬더니 그 때 여행한 기억들은 다 사라져버리더라구요. 어디를 가서 무얼 보든 기록했던 것만이 내 것으로 남아있는 것 같습니다. 겪은 일들을 계속 기록하고 그리다보면 그만큼 삶은 더 풍성해집니다."
지난해 말 아시아경제지식센터 인문학 최고 경영자 과정에서 강연자로 나선 그는 말을 잠시 멈추더니 이내 노래하는 쿠바 사람들을 그린 그림을 꺼내보였다. 60~80대 노인들이 모여 노래를 부르는 부에나비스타소셜 클럽이 좋아 쿠바에 갔었다는 그는 어떻게 나이든 사람들이 이만큼 열정적으로 살 수 있는지 의문을 넘어 경이감을 느꼈다고 했다.

김병종 교수의 '길 위에서' 시리즈의 한 작품. 건물은 낡고 자동차는 고물인데도 모이면 노래하고 춤추면서 인생을 즐기는 쿠바 사람들의 모습을 그렸다. 김 교수는 이 그림을 소개하며 행복하게 사는 쿠바 사람들의 모습이 정말 아름다웠다고 했다.

김병종 교수의 '길 위에서' 시리즈의 한 작품. 건물은 낡고 자동차는 고물인데도 모이면 노래하고 춤추면서 인생을 즐기는 쿠바 사람들의 모습을 그렸다. 김 교수는 이 그림을 소개하며 행복하게 사는 쿠바 사람들의 모습이 정말 아름다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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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머리 장식 하나에도 색채를 빠뜨리는 법이 없는 쿠바 사람들과, 가난하고 자동차는 고물인데도 다 같이 모이면 춤추고 노래하며 행복한 삶을 사는 쿠바 사람들이 얼마나 아름다운 삶을 즐기고 있는지에 대한 말도 잊지 않았다. 김 교수는 이렇게 보고 느낀 것들을 기록하고, 또 그리면서 예술적 경험을 쌓는 게 뇌 건강에도 좋고 심리적 기능 발달에도 좋다며 말을 이어 나갔다.

"예술에 대한 관심을 갖는 게 기쁨과 활력이 돼 삶 전반에 영향을 주는 것 같습니다. 경영학의 대가로 알려진 피터 드러커는 일본 도자기사의 세계 최고 전문가이기도 합니다. 그에게 누군가 경영학 분야에서 탁월한 업적을 쌓을 수 있는 이유가 뭐냐고 물었더니 이렇게 답했다고 합니다. 경영학은 예나 지금이나 지겹습니다. 제 삶의 기쁨은 일본 도자기 연구에 있습니다. 도자기 연구에서 얻은 기쁨과 활력으로 경영학을 공부하는 것입니다."

'길 위에서' 시리즈 작품들이 나이 들어 잘 사는 법을 가르쳐준다면 김 교수가 그린 또 다른 시리즈 '바보 예수', '생명의 노래'는 진짜 '잘 사는' 삶을 위해선 어렸을 때의 '체험'이 중요하다는 점을 알려준다. 13살 이전에 어떤 음식을 즐겨 먹었는지, 어떤 데 관심을 가졌는지가 평생을 가기 때문에 아이들이 어렸을 때 하는 경험이 정말 중요하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열두 살에 아버지를 여읜 그는 교회 주일학교에 다니면서 아버지의 빈자리를 채울 수 있었다고 말한다. 시골 공터에서 아이들과 어울려 놀다가 해가 뉘엿뉘엿 질 때면 다른 아이들은 모두 집으로 돌아가는데 자신만 혼자 남아 멀뚱히 하늘을 바라볼 때 외로움을 많이 느꼈다고 했다. 그는 아버지를 여읜 채 주일학교에서 만나는 '하나님 아버지'를 다른 아이들과 달리 친근한 실존으로 느꼈기 때문에 '예수'를 주제로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고도 했다.

김병종 교수의 '바보 예수' 시리즈의 한 작품. 어린 시절 주일학교에서 만난 '하나님 아버지'를 진짜 '아버지'처럼 느꼈다는 김 교수는 예수의 모습이 왜 8등신에 미끈한 남자로만 그려지는지가 의문이라고 했다. 예수를 옆집 아저씨처럼 친근하게 그려낸 그의 작품, '황색 예수'

김병종 교수의 '바보 예수' 시리즈의 한 작품. 어린 시절 주일학교에서 만난 '하나님 아버지'를 진짜 '아버지'처럼 느꼈다는 김 교수는 예수의 모습이 왜 8등신에 미끈한 남자로만 그려지는지가 의문이라고 했다. 예수를 옆집 아저씨처럼 친근하게 그려낸 그의 작품, '황색 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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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교수가 그린 예수의 모습은 8등신의 미끈하고 잘생긴 남자가 아니라 훨씬 친근한 남자의 모습을 하고 있다. 예수를 우리 친척의 모습으로 그려본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서 그렸다는 '황색 예수'는 정말로 옆 집 오빠 혹은 친척 오빠의 얼굴을 한 예수님의 모습이었다.

김 교수의 유년시절, 아버지의 빈자리를 채워준 건 주일학교에서 만난 하나님 아버지만이 아니었다. 자신을 시골 태생이라고 소개하는 그는 공부에 대한 부담 없이 산과 들을 다니며 자연의 아름다움을 맘껏 느낀 것도 아버지의 부재를 희석시켜 준 고마운 삶의 기억이라고 했다.

'생명의 노래' 시리즈 작품들은 그가 소나무 숲에 누워 잠을 잤던 기억들, 그 때 느낀 흙의 포근함, 땅에서 느낀 모성과 부성을 그리거나 강물에 잠겨서 해를 바라봤을 때의 영롱한 그 느낌을 행복하게 담아내는 등 그가 자연의 친구들과 어울리며 느낀 감정들을 그렸다.

김병종 교수의 '생명의 노래' 시리즈의 한 작품. 시골태생인 김 교수는 어린 시절 산과 들을 뛰어다니며 자연의 아름다움을 맘껏 느낀 게 평생을 두고 좋은 경험으로 남을 것이라고 했다. 산 속 어딘가에 누워 잠을 잤던 기억을 담아낸 이 그림을 보여주며 그는 그 때 흙에서 따뜻한 모성과 부성을 느꼈다고 말했다.

김병종 교수의 '생명의 노래' 시리즈의 한 작품. 시골태생인 김 교수는 어린 시절 산과 들을 뛰어다니며 자연의 아름다움을 맘껏 느낀 게 평생을 두고 좋은 경험으로 남을 것이라고 했다. 산 속 어딘가에 누워 잠을 잤던 기억을 담아낸 이 그림을 보여주며 그는 그 때 흙에서 따뜻한 모성과 부성을 느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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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딘가에 누워 행복한 표정으로 잠을 자고 있는 소년의 모습을 그린 그림을 내보이며 그가 말했다. "산속을 돌아다니다가 근처 어딘가에 누워 잠을 잤던 기억이 짙게 남아있습니다. 그 흙의 원초적인 느낌들, 포근한 엄마 품 같은 숨소리, 땅에서 느낀 부성의 느낌들을 가만히 떠올려보면 제가 번듯한 대도시에서 태어났다면 화가가 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는 이어 자신의 그림을 보면 어린 시절의 경험, 유년의 색채가 그대로 남아있는 걸 볼 수 있는 데 바로 여기서 13세 이전의 체험이 평생을 좌우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고 덧붙였다.

'잘 사는 삶'을 위해선 어렸을 때 무엇을 보고 느끼느냐가 중요하다는 말과 함께 나이 들어서는 예술에 대한 관심을 갖는 것이 잘 사는 법이라는 말을 한 번 더 힘주어 말하면서 그는 이날 강의를 마쳤다.

김병종 교수의 강의를 비롯한 김용택 시인, 서지문 고려대 영문학과 교수 등의 인문학 강좌는 내달 22일부터 5월까지 아시아경제지식센터 2011 인문학 최고 경영자 과정에서 만나볼 수 있다.



성정은 기자 je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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