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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시청 핸드볼 "우리에게 '우생순'은 언제쯤 올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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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스포츠투데이 이종길 기자]“자꾸 운동 이 따위로 할 거야.”

28일 오후 용인실내체육관. 긴 호각 소리와 함께 불호령이 떨어졌다. 이내 쥐죽은 듯 조용해진 코트. 분위기는 내내 엄숙하고 무거웠다. 시한부 판정 때문이다. 해체를 눈앞에 두고 웃음과 의욕을 모두 잃어버렸다. 용인시청 여자 핸드볼은 벼랑 끝에 있었다. 훈련은 마지막 몸부림을 위한 준비에 가까웠다.
김운학 감독은 채찍을 날카롭게 치켜들었다. 질타를 내뱉으며 선수들을 거칠게 조련했다. “이럴 때일수록 감독은 중심을 잡아줘야 한다.” 훈련을 지켜보는 표정은 굳건했다. 그는 포기를 몰랐다. 용인시청은 지난해 세 개 대회에서 2승을 거두는 데 그쳤다. 올해는 다르다. 24일 정규리그를 마친 2011 SK 핸드볼 코리아리그에서 2위에 오르며 상위 3팀만 출전하는 플레이오프 진출을 확정지었다.

원동력은 강인한 정신력이다. 선수단은 지난해 말 용인시청으로부터 해체를 통보받았다. 그 근거는 재정난. 직장운동부 11개 종목이 함께 직격탄을 맞았다. 코치 자격으로 2010 광저우아시안게임을 밟고 돌아온 김 감독은 소식을 접한 뒤 그대로 자리에서 쓰러졌다. 병원 정밀검진 결과 원인은 극심한 스트레스로 밝혀졌다.

그는 핸드볼과 48년을 함께 했다. 팀 해체는 이번이 벌써 세 번째다. 처음 지휘봉을 잡은 동성제약은 IMF 여파로 무너졌다. 두 번째 감독직을 수행한 수지고는 학교 방침에 따른 공중 분해였다. 하지만 이번 해체는 마땅한 이유가 없다. 용인시청 직장운동부 중 가장 많은 국가대표를 배출했지만 축구, 조정, 빙상 등에 밀려났다.

시청 측은 6월까지 유예기간을 마련했다. 김 감독은 바로 전열을 재정비했다. “성적으로 존재의 이유를 증명해보이자”며 선수들과 의기투합했다. 항해는 순탄하지 않았다. 국가대표 남현화 등이 불확실한 미래를 이유로 코트를 등졌다. 시청 측의 명단 축소 방침까지 겹치며 김 감독은 선수 확보에 어려움을 겪었다.

권근혜, 명복희 등이 버티는 백(back)은 교체 선수가 없다. 무보수로 정규리그를 소화한 이선미는 7월 7일 막을 올리는 플레이오프 합류 여부가 불투명하다. 김 감독은 “부상 선수를 제외하면 뛸 수 있는 선수가 9명에 불과하다”며 “선수들이 체력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토로했다.

용인시의 열악한 지원도 빼놓을 수 없다. 선수들은 하복 유니폼이 없다. 훈련 때 제각각 다른 상표의 티를 입고 코트를 누빈다. 플레이오프에서는 동복 유니폼을 입고 뛸 처지다. 코트에는 그 흔한 스포츠음료도 발견할 수 없다. 숙소에서 직접 끊인 보리차로 겨우 갈증을 해소한다. 7월에는 훈련 장소마저 따로 구해야 한다. 김 감독은 “당장 훈련할 곳이 없어 큰일”이라며 “지인들을 통해 훈련 장소를 물색하지만 쉽지 않다”고 걱정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근심은 늘어난다. 지난 7개월 동안 자비를 털어 팀을 운영해왔다. 남에게 돈 한 번 빌려본 적 없던 그는 어느덧 카드빚 800만원까지 생겼다. 김 감독은 “최근 아내와 말다툼이 잦아졌다”며 “미안한 마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 지 모르겠다”고 고개를 푹 숙였다.


가족들의 만류까지 뿌리치고 선수들을 지도하는 건 제자들을 향한 깊은 애정에서 비롯된다. 그는 “선수 모두가 내 자식처럼 느껴진다”며 “함께 어려움을 극복해 온 이상 끝까지 이겨내 유종의 미를 거뒀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선수단은 28일 한숨을 돌렸다. 용인시가 유예기간 연장 여부를 다음 달 초 재논의하기로 결정한 까닭이다. 이는 대한핸드볼협회에서 올해 말까지 운영하는 조건으로 하반기 운영비 2억5천만 원을 지원하기로 함에 따른 방침이다. 그 여부는 7월 1일이나 4일쯤 직장운동경기부 운영심의위원회를 통해 결정된다.

김 감독은 “해체를 하더라도 용인시청 유니폼을 입고 플레이오프에 출전하고 싶었다”며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 하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하지만 그 표정은 밝지 않았다. 평생을 함께 해온 핸드볼에 대한 실망은 아니었다. 비인기스포츠를 하찮게 바라보는 국내 열악한 환경에 대한 서러움에 가까웠다.

용인시청 한 선수는 “선수들끼리 ‘자식을 낳으면 절대 핸드볼을 시키지 않겠다’고 입을 모은 적이 있다”고 털어놓았다. 김 감독의 생각도 같았다. 그는 “아들에게서 재능을 발견했지만 핸드볼을 시키지 않았다”며 조용히 되뇌었다.

“대한민국 핸드볼은 이제 죽었다.”



스포츠투데이 이종길 기자 leemean@
스포츠투데이 사진 정재훈 사진기자 roz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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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길 기자 leem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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