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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명 칼럼]금융거래세 도입론, 80년 대장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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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주명 논설위원] 경기변동을 뒤따르는 경기후행 지표와 비슷하게 금융위기를 뒤따르는 위기후행 지표라고 할 만한 것이 있다. 금융거래세 도입론이 그것이다. 금융위기가 일어나면 금융거래세 도입론이 강력히 대두된다. 그러다가 금융위기의 분진이 가라앉으면 힘을 잃는다.

금융거래세 도입론은 말 그대로 '금융거래에 세금을 부과하자'는 주장이다. 투기성 단기 금융거래 억제를 주된 목표로 하여 주식, 채권, 외환, 파생상품 등 금융거래에 세금을 매기자는 것이다. 세금의 용처로는 '금융위기 때 구제금융의 재원' '빈곤 타파를 비롯한 인도주의 사업' 등 다양한 제안이 나왔다.
대공황 직후인 1930년대 중반 존 메이너드 케인스가 주식거래에 세금을 부과하자고 제안한 것이 금융거래세 도입론의 시작이었다. 그 뒤 고정환율제가 붕괴된 1970년대 초반에 제임스 토빈이 외환거래세 도입을 주장했고, 멕시코 경제위기가 발생한 1990년대 중반에는 파울 베른트 슈판이 고율과 저율의 2단계 과세방안을 제시했다. 1990년대 후반 아시아 경제위기 직후에는 국제 시민운동단체들이 투기자본의 이동에 대한 과세를 주장했고, 미국발 세계 금융위기가 시작된 2008년 이후에는 유엔(UN)을 비롯한 국제기구와 유럽 국가들이 금융거래세 도입방안을 공식 검토하고 있다.

금융거래세 도입론은 경제학자들의 이론적 제안으로 출발한 뒤 금융위기에 의한 각성과 시민운동에서 힘을 얻었고, 이제는 실제 제도화가 거론되는 단계에 이르렀다. 80년 가까이 이어져온 대장정이다. 그 사이 스웨덴, 칠레, 브라질 등에서 이런저런 형태로 금융거래세가 실행됐으므로 경험도 축적됐다. 우리나라의 증권거래세도 금융거래세의 일종이다.

10여년 전부터는 정보기술(IT)의 발달과 실용화 덕분에 금융거래세의 부과와 징수에 따르는 기술적 난점이 거의 해소됐다. 남은 문제는 정치적 의지와 실천뿐이다. 이런 가운데 최근 국내외에서 금융거래세 도입론이 전에 없는 추진력을 얻고 있어 주목된다. 특히 프랑스와 독일 정부가 오는 11월에 열리는 주요 20국(G20) 정상회의에서 '구체적인 결과'를 끌어낸다는 목표 아래 우선 유럽연합(EU) 차원에서 합의를 형성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지난달 말 민주당이 '보편적 복지 재원조달 방안'의 하나로 파생상품에 대한 거래세 부과안을 내놓았다.
금융자본과 금융회사들은 국적을 불문하고 강력히 반발한다. 금융거래세는 금융시장을 왜곡시키거나 효과가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금융거래세가 도입되면 투기적 단기거래가 위축되어 그러한 거래가 그들에게 낳아주는 막대한 이익이 급감할 수 있다는 걱정이 반발의 근본 이유인 것이 분명하다. 그들의 거센 반발은 역설적으로 금융거래세가 도입되면 그 효과가 클 것임을 말해준다.

금융거래세 도입에 더 큰 걸림돌은 어느 한 나라가 단독으로 금융거래세를 도입하면 국제자본과 금융회사들이 다른 나라로 가버릴 수 있다는 우려일 것이다. 이런 우려가 국수적 애국주의와 결합하면 금융거래세 도입을 밀고나갈 정치적 리더십이 힘을 잃게 된다. 이런 점에 비추어도 금융거래세를 전 세계적으로 도입하기에 앞서 우선 범유럽 차원에서 도입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는 것은 의미 있는 움직임이다.

외환과 파생상품을 포함한 금융거래는 실물경제에 비해 규모가 대단히 크기 때문에 1% 미만의 낮은 세율을 적용해도 많은 금액의 금융거래세를 거둘 수 있다. 그 세수는 각국의 재정적자 문제와 국제적인 기아 및 환경오염 문제 해결을 위해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다. 미국이 반대하고 있어 합의가 쉽지는 않겠지만 금융거래세에 관한 국제사회의 논의가 지금 흥미롭게 진행되고 있다.




이주명 논설위원 cm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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