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근 감독의 첫 인상은 짜증나는 지도자였다. 1995년 롯데에 입단해 쌍방울과 경기를 치르며 그를 처음 만났다. 상대 팀 감독이지만 필자는 너무 하다고 생각했다. 5, 6점차 이상 뒤진 경기의 9회 주자가 없는 2아웃 상황에서도 타석에 나서면 어김없이 투수를 교체했다. 상대 팀 타자로서 결코 기분 좋은 상황은 아니었다. 지고 있는 것도 속상한데 아웃카운트 하나를 남기고 투수를 교체하는 뻔뻔함에 매번 울화통이 터졌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돌이켜보니 다른 생각이 들었다. 김 감독은 오늘 경기를 승리한 것에 만족하지 않았다. 다음날 경기까지 계산하고 경기를 운영했다. 그는 상대 팀 간판타자에게 마지막 타석까지 타격감을 끌어올릴 여지를 남기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다음날 던지거나 경기감각이 무뎌진 투수들에게 컨디션을 유지할 기회를 제공했다. 옹졸하다고 여겼던 교체는 치밀하게 준비된 하나의 레퍼토리에 가까웠다.
구단의 한국시리즈 악연을 끊은 필자는 감격에 겨워 펄쩍펄쩍 뛰었다. 하지만 상승세에 제동이 걸린 김 감독에게는 쓰라린 아픔이 됐다. 팀에 준우승을 안겼음에도 불구 이내 LG로부터 해고를 통보받았다. 김 감독은 그 뒤로 2등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고민을 많이 하는 것 같았다. 어쩌면 필자의 결정적인 홈런 한 방으로 인해 그가 훗날 SK에서 더욱 강해진 지도력을 펼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김 감독이 2007년 SK의 지휘봉을 쥐기 전까지 필자는 가끔씩 찾아뵈며 안부 인사를 드렸다. 그가 건네는 말에는 야구에 대한 심오한 철학이 깊게 새겨있었다. 현역시절 이상으로 많은 것을 공부할 수 있었다고 자부한다. 야구감독의 처지까지도. 자리는 누가 앉더라도 어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는 가시방석이다. 무난하게 선수단을 이끌어도 선수, 프런트 모두의 지지를 얻기 어렵다. 기회를 제공받은 선수에게 감독은 최고의 은인으로 여겨질 수 있다. 반대로 버림을 받는 선수들은 경기장 뒤에서 욕설을 내뱉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 과정을 바라보며 필자는 ‘가진 것을 모두 내놓고 자존심을 택하는 감독이 국내에 얼마나 있을까’라고 생각했다. 결론은 몇 번을 고민해도 다르지 않았다. 김 감독은 결코 쉽지 않은 선택을 했다.
SK 구단과 마찰이 빚어낸 결과는 시간이 지나면 판가름 날 것이다. 누가 실수를 했는지도 머지않아 드러나게 돼있다. 필자는 야구계에 입문해 김 감독 이상으로 열정적인 지도자를 보지 못했다. 그는 단 한 명의 선수도 포기하는 법이 없었다. 휴일인 월요일까지 반납하며 2군 경기를 관전했고 선수관리에 자주 밤잠을 포기했다.
빼어난 선수는 그라운드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감독은 그렇지 않다. 후배들에게 진심으로 존경받고 사랑받는 지도자를 모시기란 드넓은 모래사장에서 반지를 찾는 것만큼 어렵다. 야구 하나에 죽고 사는 달인을 놓쳐버린 야구계. 언젠가 야구인들은 지금의 엇갈림을 그리워하게 될 것이다.
마해영 IPSN 해설위원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