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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정연휴도 건너뛰고 선주사와 협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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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重, 수주전 뒷 이야기 - ①

[아시아경제 채명석 기자] 수주산업인 조선 사업은 계약을 차지하기 위한 경쟁이 그 어느 부문보다 치열하다.
오는 19일 창립 37주년을 맞는 삼성중공업 도 선박 수주전을 수없이 거치며 지금의 성공을 이뤄냈다.

다음은 수주전과 관련해 직원들이 지난 2004년 발간된 삼성중공업 30년사에 수록한 뒷이야기를 정리했다.

조선해양사업본부는 1982년 5월에 독일 하팍로이드사로부터 컨테이너 전용선 2척을 수주해 1984년 인도한 바 있었다. 따라서 우리는 1986년에 있은 동사의 새 컨테이너 전용선 수주도 어느 정도 낙관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중국측의 저가 공세에 밀려 최종 경합에서 탈락, 반복 수주의 기회를 놓치는 쓴맛을 보게 됐다.
그로부터 3년후 하팍로이드사가 초대형 컨테이너선 건조 계획을 갖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한 우리는 지난번 중국측에 당한 수모를 만회하기 위한 총력전을 결의하기에 이르렀다.

워낙 대형 프로젝트인 데다가 선주가 세계 일류 해운사였고 거기다 당시는 조선 경기가 회복되기 이전이라, 국내 조선소는 물론 일본·중국 등의 조선소들이 물량 확보를 위한 치열한 경쟁에 돌입했다. 하지만 이들 경쟁사들에 비해 우리의 여건이 상대적으로 취약했던 게 사실이었다. 사무전산화가 채 마무리 되지 않았을 때라 긴급히 견적 제출을 요구하는 선주의 재촉에 원시적인 데스크탑 컴퓨터로 대응할 수 밖에 없었고, 그나마 원가계산 도중에 작동이 중단되는 일이 많아, 하나하나 수작업을 하지 않으면 안됐다. 거기다 지속되는 원화절감으로 대일 경쟁력이 약화되고 있는 시기였고, 설상가상으로 노사분규의 회오리가 전국을 휩쓸고 있던 시기라 더욱 어려운 형편이었다.

어쨌든 연일 밤샘 작업을 거친 후에 선주로부터 최종 선가 등 제조건을 협상해 보자는 제의를 받아 낸 것이 1989년 1월. 그동안의 인건비 상승과 자재비 급등으로 대폭적인 건조원가의 상승요인을 안고 구정연휴를 반납한 채 함부르크 현지로 날아간 일행의 발걸음은 그리 희망적이지는 못했다. 선주측 대표는 역시 선가 인하 등 자신들이 유리한 쪽으로 협상을 이끌어 가려고 했다. 우리는 거기에 맞서 선가 인상 조정의 불가피함을 거듭 설명했지만, 결과는 ‘후일 입장 통보’로 끝나고 말았다. 그 즉시 협상이 결렬될 듯한 냉랭한 분위기였다.

상황을 급전시킨 것은 이튿날 우리측 최관식 부회장과 선주사 회장간의 최종 상담이었다. 설날 차례도 제대로 못 지내고 온 최 부회장은 우리측 입장을 재설명하며 이렇게 말했다.
“본인은 꼭 계약을 따겠다는 생각만으로 온 것이 아니라 오늘이 우리나라의 가장 큰 명절인 설날이지만, 선가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점과 거기에 대한 사과 말씀을 드리기 위해서 온 것”이라고. 이 말에 선주사 회장의 “명절도 못 쉬고 먼 이곳까지 오게 해 미안하다”는 응답에 어제까지의 냉랭하던 분위기는 차츰 화기애애하게 변해갔다. 이후 상담을 지속한 결과 기본 선가의 일부 인상 조정, 지불조건 개선으로 인한 수입이자 및 환차익 효과, 처음 2척에서 5척으로 선박 수가 늘어난 데 따른 건조원가 절감 효과 등 당초 계획보다 훨씬 나은 조건의 계약이 성립됐다.

1989년 2월 드디어 계약을 체결했다. 이 때 수주한 5척은 고부가가치선인 동시에 세계 최대형인 4422TEU급 컨테이너선. 이후 1991년 7월에도 같은 선박 3척을 추가로 수주해 총 수주금액 6억2800만달러에 달하는 동일 선사가 발주한 단일 프로젝트로는 세계 최대 규모의 수주를 기록하게 됐으니 이날 5척 수주의 의미는 가히 역사적이라고 할 만 했다. 그동안 계약 상담을 위해 호텔방에서 새벽까지 일하다 지쳐 잠들었던 일, 코피를 흘리면서도 계산기를 두드리던 동료의 모습, 늘 수면이 부족해서 아예 세면을 포기하고 10분이라도 더 잠을 청하던 일···. 이런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비록 명절날 차례도 지내지들 못했지만 모두들 ‘이 역사적인 쾌거를 이룬 날만은 조상님들도 용서하리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채연택 부장(조선해양 오슬로지점)



채명석 기자 oric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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