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기분이었습니다. 모두가 이스트팩을 매고 있을 때 서울에서 유행하는 라이프가드 가방을 매고 와 마치 자신만의 독특한 센스인양 구리시 패션 리더로 군림하는 재수 없는 친구를 보는 것 같은. 미국에서만 8백만 장, 전 세계에서 1500만 장을 팔았다는 외형적 배경에도 불구하고 에반에센스의 데뷔 앨범 < Fallen >은 북유럽에서 유행하던 고딕 메탈의 ‘에센스’만을 빼와 미국인들의 입맛에 맞게 버무렸다는 혐의를 피하긴 어려웠죠. 물론 모든 창작은 모방에서 시작합니다. 다만 그걸 자신의 센스인양 포장하는 건 다른 문제지요. 씨어터 오브 트래저디의 셀프타이틀 데뷔 앨범에서 유려하게 흐르던 중세적 비장미를 기억하는 일부 익스트림 메탈 팬들에게 ‘Going Under’ 혹은 ‘Call Me When You're Sober’ 뮤직비디오에서 마녀 같은 느낌을 연출하는 에이미의 모습이 그저 코스프레처럼 비춰진 건 당연할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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