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판에서는 '꼼수를 뒀다'는 말을 흔히 쓴다. 정수나 정석이 아니라 상대방이 미처 눈치 차리지 못하고 걸려들기를 바라면서 두는 수거나, 큰 국면을 보지 못하고 살기에만 급급해서 두는 수를 꼬집는 말이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가 즐겨 읽고 심지어 '나를 만든 것은 손자의 병법'이라고 했던 손자병법. 36계 줄행랑으로 유명한데, 손자병법은 전쟁을 하는 36가지 방법론을 펼쳐놓은 것이고 그중 하나가 제36계 "주위상(走爲上), 도망가는 것을 상책으로 삼는다"이다.
나머지 35계를 보면, 제1계 '만천과해(瞞天過海), 하늘을 속이고 바다를 넘는다', 제6계 '성동격서(聲東擊西), 동쪽을 향해 소리치고 서쪽을 공격한다', 제10계 '소리장도(笑裏藏刀), 가슴에 비수를 숨기고 겉으로는 상냥하게 대한다', 제17계 '포전인옥(抛塼引玉), 벽돌을 던져 구슬을 얻는다(부담 없는 미끼를 던져 상대방이 물기를 기다린다는 뜻)' 등등 소위 꼼수라 할 병법들이 가득하다.
그래서 기자는 꼼수에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는 정수, 정석을 알아야 한다. 꼼수만 둘 줄 알아서는 그 넓은 바둑판에서 포석부터 헤맬 것이다. 긴 인생살이 꼼수로 살아가기는 더더욱 어렵다. 정석을 알아야, 평소에 정석을 펼쳐야 가끔 놓은 꼼수가 먹히거나, 최소한 욕은 덜 먹는다.
둘째, 자신이 놓은 수가 꼼수라는 것을 스스로 알아야 한다. 남들이 보기에는 영락없는 꼼수인데 자신만 정수라고 믿는다면, 정석을 모르는 사람이거나 어리석은 사람으로 비쳐질 뿐이다. 자신을 먼저 속여야 남을 속일 수 있다는 말도 있지만 이는 사기, 즉 범죄의 영역이다.
셋째, 자제할 줄 알아야 한다. 이 정도면 서로 양해하고 넘어갈 수준이어야 꼼수가 먹히고, 상대방이 꼼수에 당했음을 알아차리더라도 웃어넘기는 것이다. 계속 꼼수를 둔다면 상대방이 점잖은 사람이면 '허허 이런 사람을 봤나' 하면서 다시는 상대하지 않을 것이고, 성질이 급한 사람이면 드잡이가 벌어지기 십상이다.
넷째, 인정할 줄 알아야 한다. 남들은 다 꼼수임을 알고 있는데 저 혼자 아니라고 우기면 볼썽없다. 강하게 우길수록 사람들은 멀어져 간다. 판세가 어지러울수록 꼼수를 둘 여지가 많아진다. 꼼수거리도 많아지고 꼼수를 둬서라도 우세를 점하고 싶은 욕망이 굴뚝 같아진다.
경제는 갈수록 어려워지고 정치판은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혼란스럽다. 꼼수가 기승을 부리고 꼼수꾼들이 활개 칠 환경이다. 자격기준을 놓고 걸러내느라 바빠지게 생겼다.
김헌수 국장대우 겸 증권부장 khs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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