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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litically Incorrect : FTA(자유무역협정)과 '비자유' 개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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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공순 기자]

1. 많은 언론들이 한미 FTA에서 투자자 국가제소조항(ISD)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지만, 한미FTA의 핵심 골간은 '미국식 자유 시장경제 체제를 한국에 이식'하는데 있다. 이미 지난 2008년에 파산한 미국식 체제를 뭐가 좋다고 여기까지 들여오려는지는 몰라도, 한미FTA의 헌법적 문제는 한번도 제대로 논의되지 않았다.
2. 우리 헌법은 "대한민국 경제질서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제119조 제1항), 그리고 "국가는 균형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제119조 제2항)고 선언한다.

3. 이병철 조선대 법대 교수는 "법학계의 다수 학자들은 우리 헌법상의 경제질서가 '수정자본주의 이론'에 입각한 '사회적 시장경제질서'라고 해석"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헌법재판소는 다소 엇갈리는 판례를 내놓고 있지만, 명시적으로 사회적 시장경제 질서를 부인하지는 않고 있다.

4. 이에 반해 미국의 시장경제 질서는 명백히 '시장 중심적인 자유시장 경제'를 지향한다. 근본적인 헌법 이념에 있어서 양자는 명백히 충돌한다. 준헌법적 효력을 갖는 국제 조약을 비준하기 위해서는 우리 헌법을 바꾸어야 한다. 최소한 국민투표를 통해 국민적 승인과정을 거쳐야한다. 만일 이같은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면 그것은 조약을 통한 '불법적인 개헌'에 불과하다. 아무리 좋은 말로 윤색해도 '법 기술을 악용한 해석 개헌'이다.
5. 국회의 비준을 거친 국제조약을 법률로 규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더구나 ISD 조항으로 사법권이 국제적인 중재기관에 넘겨진다면, 국내 사법권의 영역밖의 사안이 되고 만다. 만일 국제조약이 국내의 법질서와 충돌이 빚는 경우에는 그 헌법적 적실성을 묻는 것이 유일한 해결책이다. 헌법재판소는 그러라고 만든 기관이다.

6.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은 야당이 추천한 헌법재판소 재판관 후보인 조용환 변호사에 대한 임명을 사실상 거부했다. 조용환 변호사는 인권변호사로 더 알려지기는 했지만, 실제 전문분야는 회사법과 상법이다. 그리고 90년대 후반 이후에는 국제법으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조용환 변호사의 가장 널리 알려진 논문중의 하나는 90년대 초반 발표한 전두환 내란 사건에 관한 것이다. 그는 이 논문에서 전두환의 내란 사건을 '국가에 의한 국민에 대한 범죄'로 규정했다. 즉 그것은 전두환 일당의 범죄일 뿐만이 아니라, '국가의 범죄'라고 정의한 것이다. 그것은 해방 이후 관행적으로 당연한 것으로 간주되어 오던 국가와 국민 사이의 관계를 재정의한 첫번째 법률 논문이기도 했다. 국민은 국가의 부속품이 아니라, 국가와 개별적인 계약관계에 있는 침해불가능의 절대적인 주체라고 규정한 것이다. 그러나 정작 조 변호사가 가장 자랑스러워한 사건은 회사법과 관련해 국가의 선임변호사로 재벌그룹과 싸워 이긴 소송이었다. 그는 그 재벌기업으로부터 100억에 가까운 돈을 국가로 환수했다. 그는 '인권' 변호사이기 이전에 '법률가'였다. 이것이 그가 5개월이 넘게 대통령으로부터 임명동의를 받지 못한 이유라고 주장한다면, 법률적으로 처벌 받을까?

7. 90년대 초반 초대 헌법재판관을 지낸 변정수 헌법재판관은 퇴임 후 사적인 자리에서 국가보안법상의 고무찬양죄 위헌 심판 사건을 이렇게 회고했다. "그건 법률 해석의 문제가 아니라, 국어의 문제였다". 그는 법률가로서 한국의 법조계를 부끄러워했다. 그는 그 심판 사건에서 유일하게 위헌의견을 낸 재판관이었다.

8. 제도로서의 헌법도 민주주의도 국민과 주권을 보호해 주지는 못한다. 대한민국은 '자유무역협정'을 가장 '비자유'로운 상태에서 통과시켰다. 그것은 타인의 '자유'일지는 몰라도 우리 국민의 '자유'는 아닐 것이다.

9. 1987년 헌법은 80년대 민주화 운동의 결과물이었다. 그 한계와 성과를 모두 포함하고 있는 역사의 타협점이기도 했다. 2011년 11월 22일. '87 체제가 끝났다. 판도라의 상자가 열린 것이다.






이공순 기자 cpe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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