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Dim영역

[아, 저詩]마종기 '축제의 꽃'

스크랩 글자크기

글자크기 설정

닫기
인쇄 RSS
가령 꽃 속에 들어가면/ 따뜻하다./ 수술과 암술이/ 바람이나 손길을 핑계 삼아/ 은근히 몸을 기대며/ 살고 있는 곳.// 시들어 고개 숙인 꽃까지/ 따뜻하다./ 임신한 몸이든 아니든/ 혼절의 기미로 이불도 안 덮은 채/ 연하고 부드러운 자세로/ 깊이 잠들어버린 꽃.//내가 그대에게 가는 여정도/ 따뜻하리라./ 잠든 꽃의 눈과 귀는/ 이루지 못한 꿈에 싸이고/ 이별이여, 축제의 표적이여./ 애절한 꽃가루가 만발하게 / 우리를 온통 적셔주리라.

마종기 '축제의 꽃'
■ 따뜻하다는 말의 의미값을 이만큼까지 따뜻하게 써보지 못한 거 같아 분하다. 꽃 속의 따뜻함. 빛깔과 정적이 주는 아늑함. 수술과 암술이 은근히 몸을 기대고 있다는 관찰은 꽃잎 속에 더없이 평화로운 신방을 차린다. 하지만 마종기는 그 평화를 예찬하러온 사람은 아니다. 문제는 시든 꽃이다. 시든 꽃 속도 여전히 따뜻하다는 저 통찰이 마음을 떨게 한다. 사랑이 끝나고 슬픔마저 잠들어버렸다 하더라도, 거기 여전히 혼절의 기미로 이불도 안 덮은 채 부드럽게 누워있는 사랑이 있다. 이별이란 이런 것이다. 헤어진다는 것은, 만난다는 것의 반댓말이 아니다. 이별은 만남이 지니고 있던 따뜻함이 여전히 내부에서 가만히 잠들어, 오히려 기억 속에서 작은 축제가 되는 그런 꽃이다.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ㆍ시인 isomis@



AD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함께 본 뉴스

새로보기

이슈 PICK

  • [포토] 코엑스, 2024 올댓트래블 개최 [포토] 국민의힘, 민주당 규탄 연좌농성 [포토] 2800선까지 반등한 코스피

    #국내이슈

  • 인도 종교행사서 압사사고 100명 이상 사망…대부분 여성 빈민촌 찾아가 "집 비워달라"던 유튜버 1위…새집 100채 줬다 "나는 귀엽고 섹시" 정견발표하다 상의탈의…도쿄지사 선거 막장

    #해외이슈

  • [포토] '분노한 農心' [포토] 장마시작, 우산이 필요해 [포토] 무더위에 쿨링 포그 설치된 쪽방촌

    #포토PICK

  • "10년만에 완전변경" 신형 미니 쿠퍼 S, 국내 출시 '주행거리 315㎞'…현대차, 캐스퍼 일렉트릭 공개 911같은 민첩함…포르셰 첫 전기SUV '마칸 일렉트릭'

    #CAR라이프

  • [뉴스속 인물]"MS 주식이 대박"…빌 게이츠보다 돈 많은 전 CEO [뉴스속 그곳]세계 최대 습지 '판타나우'가 불탄다 [뉴스속 용어]불붙은 상속세 개편안, '가업상속공제'도 도마위

    #뉴스속OO

간격처리를 위한 class

많이 본 뉴스 !가장 많이 읽힌 뉴스를 제공합니다. 집계 기준에 따라 최대 3일 전 기사까지 제공될 수 있습니다.

top버튼

한 눈에 보는 오늘의 이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