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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라디오] 짙은, 울지 않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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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바뀌는 그믐의 밤, 잠이 들면 눈썹이 하얗게 변해버린다는 이야기를 믿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손으로 잡을 수도, 눈으로 볼 수도 없는 경계너머로 우수수 넘어가 버리는 시간의 무리들이 흘리는 흔적이 깜빡이지 않는 눈 위에 쌓이는 것이라 생각 했습니다. 그래서 잠들지 않는 사람들은 하얀 눈썹 대신, 시간의 가루들이 하얗게 빛나는 밤을 볼 수 있을 것이라 상상 했습니다. 짙은의 EP <백야>는 그 밤의 가운데에 터져 나온 고백입니다. 어둠은 눈꺼풀의 뒤편에 있고, 날아가든, 길을 묻든, 눈을 감지 않는 이에게 암흑은 오지 않습니다. 그리고 밤을 유예시킨 사람은 지난날 기타와 함께 맴돌던 고민을 피아노 선율에 얹어 “울지 않을래, 피하지 않을래”라는 다짐으로 뭉쳐냅니다.
그러나 이 외침은 과녁을 향해 곧게 날아가지 않습니다. 현악의 선율은 둥근 바람을 만들어 목소리의 등을 멀리 밀어줍니다. 태양은 지지않음으로 거기 떠 있는 달에게 승리를 거두고, 빛이 밝히는 곳에는 어디에나 목소리가 도달합니다. 심해의 고요가 고래의 노래를 들을 수 있게 하듯, 사위어 들지 않는 빛 속에서 목소리는 새카만 발자국을 남깁니다. 이번 앨범을 기점으로 성용욱은 홀로 짙은을 이끌어 갑니다. 어제의 나와 내일의 너가 함께 여행을 떠나 뜬 눈으로 하얗게 밤을 지새운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새롭게 출발하는 밤, 눈을 감을 수 없습니다. 눈썹 위에 시간이 쌓이지 않도록 부지런히 봐야합니다. 어둠이 밤을 살라먹지 않도록, 맹세의 발자국을 잃지 않도록.

<10 아시아>와 사전협의 없이 본 기사의 무단 인용이나 도용, 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이를 어길 시민, 형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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