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너나할 것 없이 남들이 자신을 좋은 감정으로 추억해주길 바라죠. 그러나 모두의 바람과는 달리 얼굴이 아닌 이름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나빠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이는 이름을 듣자마자 당장에 미소부터 짓게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주 MBC <황금어장> ‘라디오스타’ 이후, 저는 줄리엔 강 씨를 ‘행복한 사람’으로 기억하게 될 거예요. 아니 그저 기억 정도가 아니라 지금 줄리엔의 이름을 타이핑하는 순간 실실 웃음이 흘러나오기 시작했으니, 이게 무슨 조화인지 모르겠군요.
사유리를 비롯한 좌중이 합심해서, 우즈베키스탄에서 온 미녀 자밀라 얘기만 나오면 곤란한지 입 꼬리가 계속 올라간다고 놀려대자 줄리엔 씨는 다급히 손사래를 치며 말했어요. “나 항상 웃어요. 난 행복한 사람이니까.” 같은 장난이 수차례 이어졌던지라 슬며시 짜증이 났을 법도 한데 끝까지 웃음을 잃지 않더군요. 무엇보다, 참 신선했습니다. 행복한 사람이라는 그 말, 말이에요. 하도 불평불만으로 가득한 세상이기 때문인가 봅니다. 오나가나 힘들다, 지겹다, 억울하다, 갖가지 짜증이 묻어나는 하소연을 요즘 지나치게 많이 들어 왔거든요. 그런 와중에 확신에 찬 어조로 행복하다고 단언하는 사람을 만났으니 마치 사막에서 오아시스라도 만난 양 반가울 밖에요. 말만이 아니라 진정으로 행복해보였어요. 그래요, 행복은 가지지 못한 것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가진 것을 즐길 줄 아는 것이라지요?
“종이보다 피, 더 세잖아요”라는 말, 뭉클했어요
그리고 또 하나 잊지 못할 건 “종이보다 피, 더 세잖아요”라는 표현이었습니다. ‘줄리엔에게 코리아란?’, 외국인들이 질리도록 많이 받았을 질문이었는데요. 대한민국 여권 소지자는 아니지만 ‘내 안에 한국인의 피가 흐르니까, 아버지가 한국인이니까, 코리아는 당연히 내 나라’라는 줄리엔 씨의 진심이 느껴지는 답, 그야말로 가슴 뭉클한 감동이었어요. 그런데요, 몇 년 전 KBS <미녀들의 수다> ‘설 특집 미남들의 수다’에서 처음 봤을 때만 해도 카리스마 넘치는 격투기 선수 데니스 강의 동생이라는 선입견 탓이었을까요? 지금처럼 활짝 웃는, 마냥 밝은 느낌은 아니었습니다. 더구나 한국을 내 나라로 여기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죠.
물론 무슨 소리가 오가는지 잘 알아듣지 못하던 시기였기 때문일 수도 있고, 여자 게스트들이 물색없이 들이대는 분위기에 당황했을 수도 있지만, 아무튼 그리 편안한 기색은 아니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니 그럴 만도 한 것이 처음 한국에 왔을 때 가장 놀라웠던 것이 한국 여성의 애교라면서요? 고향 밴쿠버에서는 애교가 아기에게나 해당되는 얘기라는데 이거야 원, 몇몇 여성들이 돌아가며 콧소리를 내고들 있었으니 불편하기도 했겠죠. 그런 이해가 되지 않던 부분들이 몇 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고 해서, 지금이라고 모두 납득이 되는 건 아닐 거예요. 그래도 생경하고 마뜩치 않았던 부분조차 문화로,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려고 노력하다 보니 어느새 한국이 내 나라로 바짝 다가오게 된 거겠죠.
저도 매사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가져보려구요
사실 시트콤에서 ‘줄리엔’은 억울한 일을 두루 많이 겪은 캐릭터잖아요. <지붕뚫고 하이킥>에서는 순재(이순재) 할아버지에게,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에서는 내상(안내상) 씨에게 이용도 배신도 숱하게 당했습니다. 필요에 따라 친구인 척 다가왔다가 입장이 달라지면 이내 등을 돌리고 마는 그들을 보며 부끄러울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어요. 그리고 캐릭터와 본래 성격이 별반 다르지 않지 싶은 줄리엔 씨가 실제로도 비슷한 일을 겪지는 않았을까, 마음이 쓰이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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