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정부지로 치솟던 스페인과 이탈리아의 국채 조달금리는 올해 들어 큰 폭으로 떨어졌다. 이달 10일 스페인 10년만기 국채 금리가 거의 1년만에 5% 이하로 떨어졌고 23일 실시된 10년물 입찰에서는 주문이 쇄도하면서 사상 최대규모인 240억유로 규모의 조달을 성공리에 마쳤다. 이탈리아도 15일 15년 만기 장기국채 60억유로를 지난해 7월 7.1%보다 크게 떨어진 4.8% 금리에 성공적으로 조달했고 28일 2년 만기 제로쿠폰 단기국채 40억유로 어치를 2010년 3월 이후 최저 수준인 낙찰금리 1.434%로 발행했다.
이는 지난해 ECB가 유로 수호 의지를 확인하고 무제한 유로존 국채매입(OMT)을 발표하는 등 적극적으로 대처하면서 시장들의 불안을 가라앉혔기 때문이었다. 골드만삭스는 스페인·이탈리아 등의 국채가 앞으로도 강세를 이어갈 것으로 전망했다. 재정위기국으로 분류됐던 이들 국가 국채발행분의 60% 이상을 다른 유럽 국가와 미국 투자자들이 소화하고 있으며, 지난해 유럽을 버렸던 투자자들이 유럽 주변부 국가들로 투자 포트폴리오 재조정에 적극 나서고 있다는 분석이다.
국채시장의 안정화는 유로존 위기가 반환점을 돌았다는 징조로 해석된다. 개선 조짐은 다른 분야에서도 나타난다. 총 1조 유로에 가까운 유럽중앙은행(ECB)의 3년만기 초저금리 장기대출을 수혈받은 유럽 은행 278개가 대출금 1372억유로을 조기 상환하는 등 의존도를 다시 줄이고 나섰다.
유로존 국가들의 실물경제는 여전히 암울한 상태다. 역내 최대 경제대국인 독일이 지난해 4분기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고, 스페인 등의 실업률은 극도로 높은 상태다. 주변부 국가들이 약속한 대로 재정적자 감축 목표 달성에 실패할 수도 있다. 또 유럽 중소기업들은 여전히 은행권으로부터 대출받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무엇보다도 국채시장 안정화에 대한 가장 큰 우려는 유로존 각국 정치권이 이를 명분으로 적극적 경제구조조정에 미적거릴 수 있다는 것이다. 씨티그룹의 빌렘 뷔터 애널리스트는 “지금까지 유럽연합(EU)과 주요국 정상들은 서로 줄다리기만 하다 시장의 위기가 벼랑 끝까지 몰렸을 때에야 간신히 합의에 이르곤 했다”면서 “정치권의 등을 떠밀 가장 큰 이유가 사라지면 이들은 나태해질 것이며, 이것이 바로 섣부른 낙관이 매우 위험한 이유”라고 말했다.
김영식 기자 gr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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