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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대로에 아직 흥정하는 풍경 간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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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점, 대형마트 등에 맞서 명맥 잇는 강남 전통시장들
대형마트 상권 위협… “자본 앞세운 세력에 맞설 방법 없어”


▲ 5일 오후 찾은 서울 강남구 논현동 영동시장에 설 대목을 앞두고 활기가 가득하다. 지난해 12월 시장 입구에 들어선 농협축산물판매장의 철수를 주장하는 플래카드가 눈에 띈다.

▲ 5일 오후 찾은 서울 강남구 논현동 영동시장에 설 대목을 앞두고 활기가 가득하다. 지난해 12월 시장 입구에 들어선 농협축산물판매장의 철수를 주장하는 플래카드가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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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나석윤 기자] 서울 강남 대로변 한켠 골목에서 가격을 흥정하는 정겨운 소리가 들린다. 주부는 가격을 깎아주든 '덤'을 주든 하라며 가벼운 실랑이를 벌인다.
엄마를 따라온 딸 아이는 옥신각신하는 장면을 신기하듯 쳐다본다. 상인은 '남는 게 없다'면서도 대추 한 소쿠리를 얹어준다. '밀고 당기기'가 일단락되고, 사는 사람이나 파는 사람이나 모두 미소를 짓는다.

지난 1975년 개장해 강남 한복판을 지키고 있는 영동시장의 설맞이 광경이다. 1만3100㎡ 규모로, 골목형 전통시장으로는 강남구에서 유일한 곳이다. 1990년대 후반부터 백화점과 대형마트가 하나둘 밀고 들어왔지만 38년 째 지금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설을 앞둔 5일 오후 찾은 시장의 130개 점포 500여명 상인들의 하루는 여느 때보다 분주하다.

상인들이 말하는 영동시장만의 자랑은 '가격'과 '품질'과 '정(情)'이다. 이 세 가지가 백화점과 대형마트가 숲을 이룬 강남 심장부에서 영동시장을 지탱해주는 원동력이다.
20~30년씩 같은 자리를 지키다 보니 어느덧 거래하는 대부분이 단골이고, 그렇다 보니 조금이라도 싸게, 하나라도 더 주게 된다고 입을 모은다. 과일이나 채소 등 신선식품 가격은 백화점, 대형마트와 비교하면 3분의2 수준이다. 14년 째 식료품을 판매한다는 한 상인은 "몇 년 씩 가게 찾아주는 분들에게 바가지 씌우려고 하겠나"라며 "정직하게 장사해야지 안 그러면 단골손님들 단박에 끊긴다"고 말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내놓는 상품은 상인들이 새벽시장에서 직접 손봐 당일 올라온 것들이다. 이곳 상인들이 새벽 3~4시경이면 하루를 시작하는 이유다. 그래서인지 제수용품인 사과, 배, 밤, 대추할 것 없이 빛깔이 좋고, 속이 알차 보인다. "포장은 그럴 듯하지만 진짜 '속'을 알 수 없는 대형마트 제품들과는 다르다"는 게 상인들의 얘기다. 강남의 적잖은 주부들이 전통시장을 찾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어 보인다.

현재 강남구에 위치한 전통시장은 영동시장을 포함해 총 8곳. 백화점과 대형마트(SSM 포함)가 각각 6곳과 37곳임을 감안하면 '다윗'과 '골리앗'이 대결을 벌이고 있는 셈이다.

강남3구(강남·서초·송파)를 보더라도 전통시장은 16곳인 반면 대형마트는 101곳이나 된다. 설 제수용품을 보러 왔다는 주부 최수경(41·서초구 잠원동) 씨는 "전통시장에는 대형마트나 백화점이 가진 딱딱함이 없어서 좋다"며 "1500원 스티커가 붙은 상품을 1000원에 사는 건 시장이 아니면 생각할 수 없는 일"이라며 웃었다.

이런 풍경은 30년 전통의 역삼동 도곡시장도 크게 다르지 않다. 70여개 점포 200~300명 상인들의 터전인 이곳은 밤 10시가 넘어서도 불이 환하다. 6~7m 도로 양 쪽으로 길게 늘어선 좌판과 점포들에선 수시로 상인들과 소비자들의 시선이 마주친다. 시장 뒤 쪽으로 10여년 전 들어섰다는 백화점이 보인다.

이곳에서 7년 째 분식집을 운영한다는 상인은 "지금이야 앞뒤로 백화점과 아파트가 들어섰지만 예전엔 아파트 자리까지 모두 시장이었다"며 "시장이 아파트로 들어가는 길목에 있어 그나마 손님들 발길이 닿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두 곳 모두 고민이 없는 건 아니다. 주변 백화점과 대형마트들로 인해 매출은 분명 예전같지 못하다. 특히 영동시장은 최근 입구에 농협축산물판매장까지 들어서 어려움이 더해졌다. 주차공간을 마련할 부지가 없다는 점도 걸림돌이다.

상인들은 "손님들이 꾸준히 찾아오고는 있지만 명절 대목을 제외하곤 예전 같은 시끌벅적한 분위기가 덜하다"고 털어놓는다. 영동시장에서 13년 째 건강원을 운영하는 권기원 상인회장은 "20년 전만 해도 사람들 어깨가 부딪쳐 다니질 못할 정도였다"며 "큰 덩치를 앞세워 밀고 들어오는 거대자본에 영세상인들이 대응한다는 건 힘에 부친다"고 말했다.




나석윤 기자 seokyun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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