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처럼 무제한적인 디지털 기억에 대한 반성의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다양한 가치들의 균형을 유지하면서 이를 잘 다룰 수 있는 지혜가 SNS시대의 새로운 미덕으로 요구되고 있다.
디지털 기억은 수사기관이 범행을 입증하는 법적 증거가 되기도 하고 피의자가 자신의 무죄를 증명하는 무기가 되기도 한다. 최근 모 탤런트 고소사건에서는 카카오톡 서버에 기억돼 미처 지워지지 못한 메시지 내용이 사건의 향방을 결정할 주요 증거가 되고 있다. 디지털 기억은 법에서 요구하는 기간만 유지돼야 한다. 특히 통신메시지는 더 제한적으로 기억돼야 하며 통신제한조치 등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공개돼서는 안 된다.
보존할 만한 가치가 있는 디지털 유산과 역사적인 가치가 있는 기록들의 기억은 공공자산이자 집단기억으로 후세에 전달돼야 한다. 정보과잉이 오히려 올바른 현실인식과 판단에 도움이 되지 못할 수 있듯, 기억의 과잉이 후세들의 올바른 역사이해에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 따라서 사회성원들의 공감대에 기반해 기억할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결정하는 원칙과 절차를 수립해 기록을 수행해야 한다.
또 얼마 전 나만의 기억저장소를 표방했던 에버노트가 해킹당했던 것처럼 온라인 기억서비스가 해킹당해 기억이 삭제되거나 비공개 기록이 유출될 수 있다. 이 때문에 개인정보처럼 개인의 기억에 대한 보호책임을 기업에 부여함으로써 기억이 안전하게 보존됨을 보장하고 함께 나누고픈 기억, 나만 기억하고픈 기억, 나도 기억하고 싶지 않은 기억을 이용자가 원하는 대로 통제할 권한과 기능이 제공돼야 한다.
무한 디지털 기억의 시대, 우리는 무엇을 얼마 동안 기억하고 무엇은 기억하면 안 되는지에 대한 균형 잡힌 원칙을 마련해야 한다.
다만 이 같은 원칙은 후손들에게 역사적 기억과 디지털 유산을 물려줄 책임과 법에 명시된 기간 동안 특정 기억을 유지할 의무, 자신이 인터넷에 올린 소중한 기억을 강제로 삭제당하지 않을 권리, 자신의 기억이 훼손되지 않도록 보호받을 권리, 자신에 대한 기억을 통제할 수 있는 잊혀질 권리에 근거해야 한다.
이 원칙만이 디지털 기억의 시대를 사는 우리들이 기억에 질식당하지 않고 현명하게 살아갈 수 있는 지혜를 제공할 것이다.
임종인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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