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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허허···네가 잘나, 절 받는줄 아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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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내려놓고 살자며 들어간 곳이 절이었다.

스님과 묵언으로 인사 나누고 대웅전에 들어갔다. 조심스레 둘러보니 은근한 미소로 속세를 굽어보고 있는 부처 외에는 아무도 없다. 몸 낮춰 삼배하고 일어설 즈음 그분께서 낮은 소리로 말을 걸어왔다.
"멀리서 왔으니 잠시 내 앞에 앉아 피곤한 몸과 마음을 쉬도록 하라." 호의를 거절하기 힘들어 부처를 등지고 그 앞에 앉은 게 화근이 될 줄이야. 잠시 후 밖이 소란스럽더니 한 무리의 신도들이 대웅전으로 들어섰는데 하나같이 내 쪽으로 몸 낮춰 절하는 게 아닌가.

깜짝 놀란 나는 왜들 이러시냐며 두 손 흔들며 그들을 저지하려는 순간, 비로소 내 뒤에 그분이 앉아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 저들은 내가 아니라 뒤에 계신 부처께 몸을 낮추고 있는 거야.'

부처 앞에 앉아 있는 한나절 사이, 수많은 사람들이 대웅전에 들어와 절하고 물러나갔고, 그때마다 나는 민망한 마음에 맞절 해가며 한껏 몸 낮췄던 것인데….
두 손 모아 합장한 뒤 차가운 마루에 무릎 내려놓고, 두 손 머리 위로 올려 바닥 짚으면서 상체 낮추고, 이마 땅에 대고, 손바닥 뒤집어 하늘로 향하도록 살짝 들어 올리는 하심(下心)을 반복하며 몸과 마음 깨끗이 비워지는 값진 체험을 한 것이다.

문제는 나른한 오후. 심신이 조금씩 풀리더니 깜박깜박 내 뒤에 있는 부처의 존재를 잊게 됐고, 내 앞에 머리 조아리는 속세의 인간들이 하찮고 귀찮아지는 것이었다. 맞절은커녕 상대의 사소한 잘못이 들보처럼 크게 보여 눈에 거슬리고, 타박과 지적질을 해도 좀처럼 화가 가라앉지 않는 것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지금까지도 줄곧 깊은 산속 대웅전에 갇혀 지옥을 경험하는 중인데, 여러분의 근황은 어떠신지?

글=치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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