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여 궁남지 한복판에 있는 정자 '포룡정(抱龍亭)' 바로 앞 돌축대 틈바구니로, 마악 사라지는 아름다운 뱀을 보았다. 김명인이 진저리쳤던 무엇이, 그때 내게도 들이닥쳤다. 백제 무왕의 어머니가 용을 껴안는 태몽을 꾼 뒤 세웠다는 그 정자 앞에서, 용두사미(龍頭蛇尾)의 진경을 본 듯, 캄캄한 구멍 속으로 뱀은 사라졌다. 화사(花蛇)는, 은유 그 이상이다. 그 아름다운 무늬가 징그러운 육신에 아로새겨져 꿈틀거리는 모습은 하나의 역설이다. 뱀을 두려워하는 까닭은 바닥으로 기는 긴 몸뚱이와 돋은 비늘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입 속에 감춘 날카로운 이빨과 낼름거리는 혀, 그리고 살상을 겨냥한 독기 때문이다. 사람도 때로 저 뱀처럼 닥쳐드는 게 아닐까 싶을 때가 있다. 용을 껴안은 포룡정의 뱀처럼, 사랑과 존경의 혀를 낼름거리며 스며들지만, 목표물을 빨아들인 다음에는 냉혈의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 입을 있는 대로 벌려 이빨을 드러내고 독을 뿜는다. 아름다움이 지닌 치명적인 살기(殺氣). 신문 사회면에 종종 등장하는, '꽃뱀'이란 표현만큼 실감나는 공포도 없다 싶다.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ㆍ시인 isomis@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