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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우리가 산에 오르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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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매우 특별한 산행에 참가했다. '북도수불'이라 불리는, 서울을 에워싼 북한산, 도봉산, 수락산, 불암산, 이 4개의 산을 이틀에 걸쳐 오르는 것이다. '산악판 마라톤'이라고 할 수 있을 듯한데 나는 아쉽게도 완주하지 못하고 말았지만 서울의 산을 중심으로 특별한 '서울 문명'이 형성돼 있으며 나날이 그 문명은 풍성해지고 있음을 새삼 확인하게 됐다. 서울이 빌딩과 거리로만 이뤄져 있지 않음을, 저 위에 또 다른 서울의 삶이 있다는 것을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런 점에서 특히 북한산은 거대 도시에 주어진 귀한 선물임에 새삼 감사함을 느꼈다. 그것은 우선 북한산-아니 서울의 다른 산, 또 어느 도시의 산이든-이 무엇보다 그 아래 사는 이들의 건강을 위한 산소와 녹색의 발원지가 돼 주고 있는 것에 대한 감사이지만 산은 그 이상의 공간임을 다시금 일깨워 주는 것이었다.

산이 우리에게 주는 건강 이상의 의미는 그곳이 특별한 공간, 속세와 탈속의 넘나듦이 이뤄지는 곳이기 때문이다. 속세에서 속리(俗離)의 경험을 하게 해 주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건 북한산 자락의 많은 사찰과 기도처 때문이 아니다. 산에 오르는 것 자체가 자신 안에 하나의 사찰을, 교회를 짓는 일이다. 북한산에 오를 때 우리는 그 봉우리들의 이름에 담겨 있는 원효와 의상, 문수와 보현보살의 지혜와 자비와 공덕에 안기는 것이기도 하지만 결국 산을 오르는 것은 우리 자신을 오르는 것이며 자신의 땀으로 스스로를 들어 올리는 것이다.
그것이 무엇보다 북한산이라는 '속세 속의 성소'의 특별함이다. 우리는 그 성소에 올라 무엇을 보는 것인가. 거친 숨을 뱉어 내며 대남문에서, 백운대에서 우리는 저 아래로 펼쳐지는 사람들의 도시, 인간과 인간이 야수로 만나는 곳, 그러나 나 자신 또한 그 일부로 속해 있는 곳을 내려다보며 우리 삶의 하찮음을 보는 것이다. 나 자신의 미미함을 보는 것이다. 그러나 다음 순간 우리는 또한 저 하찮은 세상으로 다시 내려가야 한다는 것을, 그 미미한 현실에 우리의 고귀한 삶이 있음을 무겁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결국 우리는 자신의 현실을, 자신의 삶을 내려다봄으로써 미미함을 스스로 깨닫지만, 그럴 때 우리는 오히려 좀 더 존귀해지는 것이다. 그렇게 '안'을 긍정하기 위해 '밖'으로 나왔음을 깨닫는 것이다. 그것이 주말이면 우리가 마치 거부할 수 없는 부름을 받는 것처럼 다시 배낭을 메고 산에 오르는 또 하나의 이유다. 
 
이명재 사회문화부장 pro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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