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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B급과 C급의 현격한 차이 ⑤ㆍ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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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규칙적으로 정해진 시간에 약을 먹는 건 고역이었다. 그것도 새끼손톱 크기의 작은 알약을 칼이나 가위로 5등분해서 먹어야 하니 이만저만 신경 쓰이는 게 아니었다. 그래서 몇 번 복용을 중단했는데 그 때마다 헤어스타일이 엉망이 되곤 했다. 약을 끊으면 남성호르몬이 다시 왕성하게 분비돼 머리카락이 뭉텅뭉텅 빠져나가는 것이다. 그렇게 몇 번을 끊었다 다시 먹다 하던 중 낭보가 접수됐다.

국내에서도 대머리치료제의 카피약이 생산되면서 약 가격이 대폭 낮아진 것이다.(약값을 아끼려고 전립선비대증 치료제를 잘라먹는 치사한 짓을 하지 않아도 된 것이다!)
그리고 몇 달이 지나 또 한 번의 기쁜 소식이 접수됐으니, 내 머리 상태를 면밀히 관찰한 의사께서 "매일 먹는 대신 이틀에 한 번씩만 먹어도 현상유지에는 큰 문제가 없다"는 진단을 내린 것이다.(약값이 2분의 1로 줄어들었다!)

매일 먹던 약을 이틀에 한 번 먹으면 한결 편할 줄 알았는데 막상 해보니 전혀 그렇지 않았다. 사람의 기억(그것도 허구한 날 술을 마셔대는 50대의 기억력)이란 통 신뢰할 게 못돼서 번번이 약 먹는 날을 까먹곤 했다. 특히 "오늘은 약을 먹어야 한다"는 둥 "아니, 어제 먹었으니 내일이 맞다"는 둥 부부간 트러블이 잦아졌다.

'무슨 방법이 없을까' 한동안 이리저리 머리를 굴린 끝에 묘수를 찾아냈으니 약 포장지에 약 먹는 날짜를 적어놓기로 했다. 한가한 주말 오후, 몇 달치 약을 방바닥에 죽 펼쳐놓고 약 포장지에 깨알 같은 글씨로 8/27, 8/29, 8/31 등등 적어 넣은 것인데 곁에서 지켜보던 아내는 무릎을 탁 치며 "굿 아이디어"라며 감탄을 금치 못했고 나 역시 스스로 엄청 대견해 했던 것인데….
몇 달이 지난 어느 날 약 포장지를 무심코 살펴보던 중 하나의 규칙을 발견했으니, 어떤 달은 약포장지에 적힌 날짜가 모두 홀수요, 어떤 달은 모두 짝수인 것이다.
 그 제서야 비로소 내 머리가 B급에도 한참 못 미치는 C급이란 걸 뒤늦게 깨닫게 된 것이다. 그것도 인생을 한참 산 50대 중반에. (끝)

<치우(恥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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