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 아오? 우리 소연이가 모헨조다로의 눈 먼 가수가 될 수 있을지?” 그리고나서 그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모헨조다로의 눈 먼 가수? 하림은 가슴이 뜨끔하였다. 그 이야기는 소연이만 알고 있는 이야기였다. 그러니까 소연이가 먼 친척 아저씨뻘 된다는 여기 수관 선생에게 전해준 것일 터였다. 그녀가 어디까지 일러바쳤는지 모르지만, 하림은 제가 저지른 죄가 있어 괜히 얼굴이 뜨거워졌다. 그날 소연이와 나누었던 은밀한 관계까지 고백하였다면 보통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아무 것도 모르는 양 여전히 미소를 띤 채 말했다.
“소연이가 장선생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른다오. 표정만 봐도 알 수 있지. 장선생 이야기를 한참동안 내게 입이 마르도록 자랑스럽게 떠들어대었으니까. 아마 그 애한테는 어둠 속에서 빛이 나타난 것과도 같았을 거요.” 하림의 얼굴이 더욱 곤혹스럽게 변하였다. 그런 하림의 옆모습을 남경희가 재미있다는 듯 흘낏 쳐다보았다. 남이 하면 불륜이요, 자기가 하면 로맨스라는 것이 사랑이라지만 자기 비밀을 들키는 것은 화가 나지만 남의 비밀을 들여다보는 것은 재미인지도 모른다. 만일 그녀가 이장이 했던 고백을 듣는다면 재미있어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이 세상의 모든 사랑은 슬픔의 양식을 먹고 자라는 나무인지도 모른다. 하나의 운명이 다른 또 하나의 운명과 만나는 것이 사랑이라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슬프지 않는 존재가 어디 있겠는가. 마다가스카르로 흘러가 그곳 여자와 만나 아이 낳고 사는 동희형도 그럴 것이고, 남편을 먼저 보내고 혼자 미장원을 하고 있는 혜경이도 그럴 것이다. 언젠가 동희형이 말했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분노가 아니라 슬픔이라는 생각이 들어. 불꽃이 아니라 풀꽃 말이야. 어머니의 눈물이 세상을 어루만질 때 세상은 비로소 바뀌는 것인지도 몰라. 늘 그랬어. 슬픔이 없는 분노는 남을 태우고 자기를 태워버려. 그리고 상처만 남기지." 그가 대학을 보냈던 80년대는 불의 시대였다. 최루탄과 화염병이 난무하던 시절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불꽃이 되어 사라졌다. 그는 그런 이야기를 할 자격이 있었다.
미안함 대신 슬픔이 자리잡고 있다는 것은 하림 역시 소연 그녀를 사랑하고 있다는 말이었다. 그것은 자기조차 확신할 수 없었던 가려진 감정이었다.
“아직 어리니까 장선생이 잘 지도해주기 바래요.” 다행히 수관 선생은 적당하게 마무리를 지었다. 어쩌면 그런 이야기를 이상하게 듣는 쪽이 더 이상했는지도 몰랐다.
“하여간 기도원 문제는 다시 생각해보기로 해요.” 이번에는 남경희를 향해 말했다. 하림은 이제 일어날 시간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글. 김영현 / 그림. 박건웅
김영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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