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박정자, 강하늘의 연극 무대
[아시아경제 조민서 기자]19세 해롤드의 관심사는 온통 '죽음'뿐이다. 매일 같이 집에서 목을 매달며 자살 흉내를 내고, 기이한 복장으로 나타나 엄마를 기겁하게 만든다. 다니던 학교에서는 화학실에 불을 질러 퇴학을 당했을 정도로 말썽꾸러기다. 이미 학교에 불이 났을 때 자신이 한 번 죽었다고 생각하는 해롤드는 그 후로 동네 장례식장을 즐겨 찾아간다. 그에게 '죽음'은 권태로운 일상을 벗어날 수 있는 '깜짝 쇼'에 불과하다.
그 날도 어김없이 장례식장을 방문했을 때였다. 80세 할머니 '모드'가 해롤드 앞에 운명처럼 나타났다. 매연이 심한 도시의 가로수를 뽑아다가 장례식장에 옮겨 심고, 동물원의 물이 더럽다고 동물원에 사는 바다표범을 몰래 풀어주는 모드는 그야말로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다. 이때부터 해롤드와 모드의 나이를 뛰어넘는 우정과 사랑이 시작된다. 천진난만하고 엉뚱한 모드의 제안은 해롤드의 영혼까지 바꾸어놓는다. "이제부터 매일매일 새로운 것을 해보자꾸나."
19세 소년과 80세 할머니의 이 사랑은 귀엽고 아기자기하다. 연극계의 대모 박정자와 드라마 '미생'의 장백기로 출연했던 강하늘이 각각 모드와 해롤드로 출연한다. 특히 실제 73세인 박정자는 때론 소녀같고, 때론 엄마같은 모습으로 무대를 장악한다. 작품에서 시대 배경은 구체적으로 언급되지 않는다. 다만 모드가 조안 바에즈의 '도나 도나'를 흥얼거리고, 일체의 규제와 규율을 벗어버리는 태도에서 68세대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자신의 누드화를 보며 "종교적이니 신부님에게 줘야겠다"라고 천연덕스럽게 말하는 모드는 해롤드에게 인생의 의미를 깨닫게 해준다.
콜린 히긴스의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작품은 한 편의 성장 드라마와도 같다. "어서 해봐. 바보 같은 짓을 할 자유도 있는 거야" 등 모드가 해롤드에게 들려주는 주옥같은 명언들을 정신없이 따라가다 보면 어느 새 가슴 먹먹한 결말이 관객들을 기다리고 있다.
조민서 기자 summ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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