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참석이 기정사실화 되면서 남북정상의 조우 혹은 회담 성사 여부가 박 대통령의 선택에 달려있는 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려해야 할 '수'가 너무 많아 판단이 쉽지 않다. 초대장을 받아놓고도 섣불리 참석 여부를 결정하지 못하는 박 대통령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김 위원장과의 만남이라는 '이벤트'를 제외하면 이 행사의 참석 혹은 불참은 미국과 러시아 간 균형외교의 시험대를 의미한다. 러시아는 지난 8일 한ㆍ러 외교장관회담에서 "한국 정상의 참석을 기대한다"는 입장을 냈다.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등 박근혜정부 핵심 외교정책을 구현하기 위해서라도 러시아와의 협력은 필수적이다. 박 대통령은 취임 후 블리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러시아에서 한 번, 한국에서 한 번 등 총 두 번 정상회담을 가지며 대 러시아 외교에 공을 들여왔다.
그럼에도 박 대통령의 불참 쪽에 무게를 두는 전망이 우세하다. 우크라이나 문제로 러시아와 대립하고 있는 미국이 동맹국들의 '불참'을 종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한국의 '중국경도론'이 미국에서 의심 받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의 메시지를 무시하는 결정을 박 대통령이 내리긴 어렵지 않겠냐는 것이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이미 불참 의사를 밝혔고, 백악관은 지난 10일 "미국의 동맹이란 차원에서 보면 한 목소리를 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상의 '지침'을 내렸다.
김 위원장과의 조우 가능성은 고민의 폭을 더욱 넓힌다. 만나서 얻을 이익이 있느냐는 게 우선 고려대상일 것으로 보인다. 베일 속 인물인 김 위원장이 국제외교 무대에 데뷔하는 모습은 전 세계 언론의 관심이 집중될 사안이다. 박 대통령과의 만남 역시 이번 행사의 하이라이트가 될 것이지만 주인공은 김 위원장일 가능성이 더 높다.
통일대박론을 주창하고 있는 박 대통령이 서울이나 평양도 아닌, 제3국에서의 자연스런 만남까지 회피할 이유는 없다는 의견도 많다. 이를 남북관계 개선의 중대 계기로 삼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참석을 기정사실화 했다지만 김 위원장이 갑작스레 러시아 방문을 취소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이렇게 되면 박 대통령은 당장의 고민을 덜 수 있겠지만 유사한 사안이 불과 4달 뒤 다시 연출된다는 점은 흥미롭다.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은 박 대통령을 오는 9월 베이징에서 열리는 2차대전 종전 기념행사, 즉 항일전쟁승리 기념일 행사에 초청했다. 시 주석은 한반도 광복 70주년이기도 한 올해를 한중이 공동으로 기념하자는 제안도 했다. 일본의 역사인식 비판장으로 꾸며질 베이징 행사에 박 대통령이 참석하는 것은 '일본은 포기하고 가겠다'는 뜻으로 비칠 수 있다.
취임 후 2년 간 일본을 제외한 한반도 주변 국가들과의 친선외교 기반을 닦아온 박 대통령은 올해 5월과 9월 열리는 국제행사를 처리하는 행보를 통해 자신의 외교안보 정책 방향을 보다 구체적이며 솔직하게 드러내야 하는 시험대에 오른 것이다.
신범수 기자 answ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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