띵~ 하고 도착한 스마트폰 문자를 읽는데 가슴 한편이 시큼해졌다. 또 한 명이 떠나는구나. 기업 인사철이구나. 착잡한 심정으로 스마트폰 자판을 꾹꾹 눌렀다. '건승하세요' 보내기 버튼을 누르기 전 잠시 머뭇거렸다. 젊어서부터 한눈팔지 않고 온전히 자신을 내던졌던 직장이었을 텐데. 삶의 한 덩어리가 떨어져 나가는 그에게 건승하라는 답장이 위로가 될까. 그래도 임원까지 올랐으니 축복받은 1모작이었다고 해야 할까.
엊그제 저녁 자리에서도 B임원은 속내를 드러냈다. '짧고 굵게'는 허세일 뿐이라고. 술 한잔을 털어 넣더니 묻는다. "최악의 연말이 무언지 아세요." 답을 찾느라 낑낑거리는데 B가 조급하게 입을 열었다. "아버지는 회사에서 잘리고 자식은 수능을 망치거나 취업에 실패하는 거죠." 다들 말없이 술잔을 기울였다.
회사에서나 큰소리를 치지 집에서는 '외로운 섬'이 기업 임원이다. 새벽 일찍 출근해 새벽 일찍 퇴근하는 일상에 가족은 점점 멀어져간다. 머리 굵었다고 데면데면한 자식들, 나이 들었다고 괄괄해지는 마눌님. 컴컴한 거실에 퇴근해 들어서면 그래도 주인이랍시고 꼬리를 흔들어주는 강아지가 눈물겹다.
그나저나 우리나라 기업들은 왜 연말에 인사를 몰아서 하는 바람에 이처럼 직장인들을 우울증에 빠지게 하는지. 연말인사와 조직개편으로 뒤숭숭한 분위기를 몇 달째 방치하는지. 기업 혁신이니 생존이니 경비 절감이니 빽빽 소리를 지르면서 지극히 비극적인 이런 손실은 왜 손을 놓고 있는지, 그것이 미스터리다.
이정일 금융부장 jaylee@asiae.co.kr<후소(後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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