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역은 집과 1.5㎞ 거리다. 그곳에서 출발하는 강남행 광역버스 첫차는 오전 5시다. 그 차를 놓치면 지각이다. 무사히 도착해서 버스를 탈 수 있을까. 빠듯한 시간이다. 시간은 계속 흐르고 어느새 4시50분을 가리켰다.
택시라는 안전판을 마련한 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보험회사 긴급출동서비스에 전화를 해 봤다. 정말로 긴급 출동이 이뤄진다면 내 차로 출근할 수도 있지 않을까. '1588-○○○○' 전화를 걸자 신분 확인을 위한 절차가 이어졌다.
초조한 시간은 계속 흘러갔다. 얼마나 흐른 것일까. 지루했던(?) 시간은 끝이 났다. 곧이어 긴급출동 기사의 전화가 왔다. 시계를 봤다. '1588' 번호로 전화한 지 불과 1분 만이다. 이름만 '긴급'이 아니라 진짜 긴급 대응이었다.
자동차 배터리 문제는 예견된 결과다. 열흘 전에도 똑같은 문제로 긴급출동서비스를 받았다. 생각해 보니 새 차를 산 뒤 5년 동안 한 번도 배터리를 교환하지 않았다. 사실상 방치한 셈이다. 우연은 어쩌면 필연의 다른 말인지도 모른다. 그 배터리는 이미 수명이 다했고 언제라도 문제가 생길 상황이었다.
15년 전 처음 '내 차'를 갖게 됐을 때는 어디 상처라도 날까 애지중지했는데 지금은 너무 무심해졌다. 사람 관계도 마찬가지 아닐까. 익숙함은 결국 소홀함으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곁에 있는 사람일수록 더 잘해줘야 하는데…. 퇴근길, '치맥(치킨+맥주)'이라도 준비해서 집으로 들어가야겠다. '영화, 드라마, 연예인, 소설….' 아내의 요즘 관심사를 함께 나누며 그동안의 '무심함'을 속죄해보련다.
류정민 사회부 차장 jmry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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