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윤보선·최규하 하야
현직 대통령이 탄핵으로 파명당한 것은 헌정 사상 초유의 일이지만 대통령직에서 도중하차한 사례는 우리 헌정사에서 여러 차례 등장한다.
이 대통령이 하야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당시 마산서 시위 도중 숨진 김주열 학생의 시신이 행방불명 한 달 만에 바다에서 발견되면서부터였다. 김군의 얼굴에 최루탄이 박힌 채 발견되면서 시위가 전국적으로 번졌다.
이 대통령은 "국민이 원한다면 사퇴를 고려하겠다"고 선언했고, 결국 1960년 4월28일 하야했다. 이 대통령 하야로 당시 허정 외무장관이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아 허정 과도정부가 출범했다.
1980년 8월16일에는 최규하 대통령이 하야했다. 광주민주항쟁 등 국정최고책임자로서 소요사태에 대한 정치도의상 책임을 진다는 게 하야의 변이었다.
최 대통령은 1979년 10ㆍ26사태로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하자 같은 해 12월21일 10대 대통령 취임했다. 최 대통령이 하야하면서 박충훈 당시 국무총리 서리가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았다.
최 대통령의 정확한 하야 이유는 끝내 밝혀지지 않았다. 민주화 이후 그의 하야에 대한 이유를 밝히기 위해 노력했지만 본인은 결국 입을 열지 않고 세상을 떠났다. 최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 가운데 최단기 대통령으로 기록됐다.
하야한 사례는 아니지만 박 대통령의 부친인 박정희 대통령은 1979년 당시 중앙정보부장인 김재규가 쏜 총탄에 맞아 서거했다. 이에 따라 부녀 대통령이 모두 청와대를 불운하게 떠나는 사태를 맞이하게 됐다.
대통령이 도중에 물러난 사례는 1987년 대통령 임기를 5년 단임제로 골자로 하는 개헌 이후에는 30년 동안 없었다.
최일권 기자 igchoi@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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