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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무거운 짐짝으로 전락'…맞벌이 죄인 만드는 늘봄학교 논란[시시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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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무거운 짐짝으로 전락'…맞벌이 죄인 만드는 늘봄학교 논란[시시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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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8시 40~50분 등교, 낮 12시 40~50분 하교. 새 학기를 앞두고 초등학교 1학년 입학 자녀가 있는 맞벌이 가정의 가장 큰 고민은 초등학교 등하교 시간이다. 초등학교 등하교 시간은 9시 출근, 6시 퇴근이 일반적인 한국 사회에서 제3자의 도움 없이는 사실상 맞벌이 가정이 소화하기 힘든 구조다. 자녀의 초등학교 입학을 기점으로 경력단절 여성(경단녀)들이 급증하는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통계청이 밝힌 수도권에 사는 직장인들의 하루 출퇴근 시간은 평균 1시간 20분. 아이를 제시간에 맞춰 등교시킨 후 출근하면 지각이 불가피하다. 초등 고학년이 되면 하교 시간이 2시대로 늦춰지기는 하지만 초등 저학년은 1시 전후로 하교하는 경우가 많아 맞벌이 가정은 방과 후 별도 교실에서 학생들을 돌봐주는 돌봄교실 신청이 필수다. 다만 돌봄교실도 수용 가능한 인원이 정해져 있어 한부모 가정, 저소득층, 다자녀 가구 등에 해당하지 않을 경우 신청해도 탈락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조부모나 제3자의 도움이 없다면 아이를 사교육 시장으로 일찌감치 내몰 수밖에 없다.

맞벌이가 보편적인 중국의 경우 초등 1학년의 등교는 8시 전에 시작해 4시 이후에 하교한다. 일부 학생을 맞벌이 가정 자녀로 갈라 신청 여부를 따져 차등 적용하는 시스템이 아닌, 학급 전원에 적용하는 공통적인 시스템이다. 물론 정규 수업 시간 외 추가 돌봄이 필요한 경우는 저녁까지 학교가 맡아주기도 한다. 학교에 머무르는 시간이 긴 대신 아이들은 학교에서 많은 것을 한다. 학교 운동장 뛰기, 줄넘기 같은 체육활동이 많고 점심 식사 후엔 낮잠을 잘 수 있는 휴식 시간이 있다.


우리 정부가 맞벌이 가정의 부담을 덜기 위해 아침 7시부터 밤 8시까지 초등학생을 돌보는 '늘봄학교'를 모든 초등학교로 확대 실시하기로 했지만 교사들의 반발이 거세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교사 5877명을 설문한 결과 응답자의 97.1%가 학교 늘봄지원실 설치에 반대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교사들이 교육을 넘어 보육까지 떠안아야 하는 데다 아이들을 돌볼 교사 수, 공간, 프로그램도 부족한 상황이라 시행까지 적잖은 진통이 예상된다. 아이들을 잘 맡아 교육할 수 있는 제대로 된 환경은 만들어주지 않고 '일단 시행'으로 밀어붙이고, 이후에 나오는 부작용은 당사자들이 감내하라는 전형적인 공무원식 탁상행정이다.


교사들의 거센 반발로 늘봄학교 논란이 커질수록 맞벌이 가정은 깊은 상처를 받는다. 일하느라 낮에 돌볼 수 없는 초등 자녀들이 교사들의 무거운 짐짝으로 전락했다는 죄책감은 맞벌이 부모들의 몫이 됐다. 교사들의 반대를 꺾고 정부의 예정대로 늘봄학교를 확대하더라도 학생들을 맡을 교사들의 반감이 어느 정도인지를 아는 부모들의 마음은 불편할 수밖에 없다.

직장인 근무 시간과 차이가 큰 현행 초등 등하교 시스템으로 맞벌이 부부의 일·가정 양립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건 분명하다. 그렇다고 무작정 맞벌이 가정을 위한 대책이라며 교사들의 희생을 강요한 밀어붙이기식 해법을 내놓으면 곤란하다. 부모가 함께 일한다는 것이 누군가에게 미안한 일, 짐이 되는 게 지금의 현실이다.





박선미 기자 psm82@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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