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가면 장학금 회수'…영재학교·과학고 우르르 떠나는 학생들

과학고서 의대 가면 장학금 회수 등 제재
중도이탈자, 검정고시로 의대 진학 추정

최근 4년간 300명이 넘는 학생이 영재학교와 과학고에서 중도 이탈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영재학교와 과학고에서 의대로 진학할 경우 장학금을 회수하거나 추천서를 금지하는 등 제재가 강화된 여파로 보인다.

9일 연합뉴스는 학교 알리미 공시자료를 분석한 결과, 2020년부터 지난해까지 전국 7개 영재학교(한국과학영재학교 제외)에서 전출하거나 학업을 중단한 학생은 총 60명으로 나타났다고 보도했다. 같은 기간 전국 20개 과학고의 전출·학업 중단 학생 수는 243명으로 집계됐다. 이를 합치면 4년 동안 총 303명이 영재학교와 과학고를 떠난 것이다.

27년만에 의대 입학정원 증원이 확정되면서 의대 합격 문턱이 낮아질 수 있다는 기대감에 학원가가 들썩이고 있다. 최근 서울 대치동의 한 학원에 포스터가 붙어 있다. 사진=조용준 기자 jun21@

연도별로 보면 영재학교·과학고를 떠난 학생 수는 2020년 79명, 2021년 83명, 2022년 75명, 2023년 66명이었다. 이전과 비교했을 때, 최근 영재학교·과학고를 떠난 학생은 늘어나는 추세다. 직전 4년인 2016년부터 2019년까지 영재학교와 과학고를 떠난 학생은 220명으로, 최근 4년 수치인 303명보다 83명(37.8%) 더 적었다.

영재학교·과학고를 다니다 그만둔 학생이 늘어난 것은 해당 학교 재학생에게 의대 진학 시 불이익을 강화한 점이 주원인으로 지목된다. 영재학교·과학고는 졸업 후 의대에 진학하는 학생에 대해 '과학기술 인재 양성'이라는 학교 설립 취지에 맞지 않는다고 봐 점점 불이익 강도를 높이고 있다.

2018년 일부 영재학교는 의대에 진학하는 학생으로부터 장학금을 회수하고, 추천서를 작성하지 않는 불이익을 가했다. 이어 2022학년도에는 이 조치를 한층 강화해 전국 영재학교와 과학고 입학생은 의대 진학 제재 방안에 동의한다고 서약해야만 학교에 지원할 수 있다. 또 의약학 계열 진학을 희망할 경우, 진로·진학 지도도 받을 수 없게 됐다.

의대에 진학하려는 영재학교 학생은 지원받은 교육비와 장학금을 반납해야 하며 일반고 전출을 권고받는다. 이와 함께 학교생활기록부에도 학교 밖 교육·연구 활동을 기재할 수 없기 때문에 의약학 계열에 진학하려면 영재학교 출신의 장점을 모두 포기해야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과학고에서도 의대에 진학하면 졸업 때 수상이나 장학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되는 등의 불리한 조치를 감수해야 한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정문.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연합뉴스에 "영재학교·과학고 중도 이탈 학생의 대부분은 의대 진학을 염두에 둔 학생들로 보인다"며 "지난해 지방거점국립대 의대 진학생 중 11명이 검정고시 출신이었는데, 이들 중 상당수는 영재학교·과학고에 진학했다가 맞지 않아서 자퇴한 학생들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또 "영재학교·과학고 졸업 후 한국과학기술원(KAIST) 등에 진학한 이후 자퇴하고 의대로 진학하는 학생들도 많은데, 이들에겐 불이익이 없다"며 "(영재학교·과학고가 우수 인재를 확보하기 위해선) 정부가 이공계 집중 육성정책, 취업 혜택 등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지난 6일 한국과학기술원(KAIST)은 올해 자퇴와 미복학 등으로 인한 중도 탈락 학생(2023년 기준)은 130명으로 지난해 125명(2022년 기준)보다 늘었다고 발표했다. 한국과학기술원의 최근 5년간 중도 탈락 학생은 2019년 76명, 2020년 145명, 2021년 100명 등으로 총 576명이다. 학교 측은 자퇴 이유는 알 수 없다는 입장이지만, 입시업계에서는 이들 중 상당수가 의대 진학을 위해 이 학교를 떠난 것으로 보고 있다. 또 올해 대규모 의대 정원 증원의 영향으로 이런 경향은 앞으로 더 두드러질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고 있다.

김현정 기자 khj27@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