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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이 배 이북 간다"…정부는 왜 납북어부를 괴롭혔나[속초·고성의 아픔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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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선 나포·피랍 1967년부터 크게 늘어
북한, 도주 어선에 총 쏴 어부들 살해하기도
정부 어로저지선만 축소…월선 조업에 책임 전가
대법원 반공법상 간첩죄까지 적용해 판시

편집자주영화 '하이재킹' 배경은 1971년 강원도 속초다. 여객기에 탑승한 용대(여진구)가 이륙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기내에 사제폭탄을 터뜨린다. 순식간에 조종실을 장악하고 승객들에게 공포한다. "지금부터 이 비행기 이북 간다." 납북 배경은 크게 두 가지다. 북한에 여객기를 넘기고 받을 혜택과 억압된 삶에서의 해방이다. 분단의 아픈 상처가 삶을 내내 옥죄었다. 가족이 월북하거나 납북됐다는 이유로 감시당하고 통제받았다. 그 고통은 과거의 일로 그냥 덮고 넘어가기에 너무나 컸다. 다시 짚어내고 풀어내야 할 아픈 상처다.

어선 나포와 피랍 사건은 1967년에 크게 늘었다. 마흔다섯 척이 납치돼 332명이 끌려갔다. 전년의 열두 척 101명보다 세 배가량 증가했다. 남북한 갈등이 최고조에 이르러 물리적 충돌이 자주 빚어졌다. 상당수는 돌아오지도 못했다. 1967년과 1968년에 납북됐다 돌아오지 않은 어부는 160명. 전체 미 귀환자의 절반 이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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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어선 나포에 혈안이 돼 선단에 포격을 가했다. 도주 어선에 총을 쏴 어부들을 살해하기도 했다. 1966년부터 이뤄진 월남 파병에 위기의식을 느낀 것이다. 상호 간 무력을 사용하지 않기로 했던 정전협정은 무력화됐다. 남과 북 모두 비정규군을 적지에 투입했다. 보복과 응징이 계속 이어졌다.

절정은 북한이 1967년 11월 3일 동해 어로 저지선 부근에서 명태잡이를 하던 어선 200여 척에 총격을 가한 사건이다. 토끼몰이식으로 포위해 어선 열 척과 어부 예순 명을 납치했다. 어민을 보호해야 했던 해군은 어떤 대응도 하지 못했다. 거진항 일대는 돌아오지 않은 가장을 기다리는 어부 가족들로 울음바다가 됐다. 구사일생으로 탈출한 선원들마저 총격으로 관통상을 입었다. 초상집이 따로 없었다. 다음 날 납북된 배 열 척은 북쪽 해역에서 어로작업을 했다. 힘없는 어부들을 남북한 갈등의 희생양으로 내몬 것이다.


우리 정부의 대책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북한과의 갈등을 해소할 방법을 찾지 못하고 어민생존권이 걸린 어로 저지선만 축소했다. 납북 사태 책임을 어민들의 월선(越線) 조업으로 돌리고, 한층 강력한 단속과 처벌로 어민들을 옥죄었다. 납북됐다 돌아온 어부들을 국가보안법과 반공법 위반으로 구속하기도 했다. 검찰은 1968년 12월 어로 저지선을 넘어 조업하다 두 번 이상 납북된 어부에게 사형을 구형하라고 전국지검에 지시했다. 어민들을 공포에 몰아넣어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극단적인 공포통치의 전형이었다.


어로 저지선이 축소되자 대량 납북 사태는 사라졌다. 하지만 1982년 울릉도 북방 170마일 대화퇴 어장에서 오징어잡이를 하다 북괴 무장 경비정에 끌려간 마산호까지 피랍은 계속 이어졌다. 주로 원거리를 출어하는 중·대형 오징어잡이 어선들이 납치됐다. 소형 선박은 어로 저지선 남하와 단속 통제로 납북이 크게 줄었다. 하지만 월선 어업과 귀환납북자에 대한 처벌과 구속은 더욱 강화됐다. 대량 구속자가 속출했으며 무리한 법 적용과 불법 수사, 고문, 일상적 감시 등으로 어민들은 최소한의 인권마저 짓밟혔다.

1972년 납북된 오대양호 선원들이 1974년 북한 묘향산에서 찍은 단체사진. (사진제공=납북자가족모임)

1972년 납북된 오대양호 선원들이 1974년 북한 묘향산에서 찍은 단체사진. (사진제공=납북자가족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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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검찰은 북한이 계획적으로 우리 어부를 납북 및 장기 억류하면서 각종 정보를 수집하고 세뇌 교육해 귀환시킨다고 판단했다. 1971년 대검찰청은 납북방지를 위해 월선 조업 어선과 선원은 1년 이상 배를 탈 수 없도록 했다. 2회 이상 납북된 어부는 가중처벌하고 선박을 몰수했다. 더불어 북에 장기체류하고 온 납북어부는 배를 타지 못하게 하고, 북의 지령을 받았지만 자수하지 않았을 땐 최고형으로 처벌한다고 발표했다.


실제로 1970년 12월 동해안에서 납북됐다 돌아온 묵호 출신 어부 네 명은 북으로부터 지령받아 간첩으로 활동했다는 명목으로 구속돼 실형을 선고받았다. 1973년에는 대법원에서 납북어부에게 탈출죄, 반국가단체 고무 찬양죄뿐 아니라 반공법상 간첩죄까지 적용해 판시했다. 북에 끌려가면 간첩 활동을 교육받고 남하한다는 전제 아래 군사분계선을 넘어 어로행위를 했다면 간첩죄가 인정된다는 해석이었다.


이러한 판결들로 납북어부는 모두 간첩으로 간주하게 됐다. 1971년 한 해에만 속초 일대에서 어부 300여 명이 월선 조업했다는 이유로 구속됐다. 이들과 가족들은 모두 일상적인 감시와 통제에 시달리며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기본권조차 누리지 못했다. 1980년대까지 귀환 납북어부와 가족을 간첩으로 몰아 조작하는 사건이 횡행해 숨죽여 지내야 했다. 남북한의 분단과 냉전이 만들어낸 최악의 굴레였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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