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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화성 아리셀 화재 생존자 “내부 구조 알아 겨우 탈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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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명 사망·8명 부상·1명 실종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여부 수사
25일 오전 합동 현장감식 예정

“살도 다 탔으니 소지품은 고사하고 단서가 아무것도 없다.”
경기 화성시 아리셀 공장에서 불이 나 연기와 불길이 치솟고 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경기 화성시 아리셀 공장에서 불이 나 연기와 불길이 치솟고 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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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 시신 소사체, 신원 파악 어려워

24일 경기 화성시 화성유일병원장례식장 관계자는 “다 훼손됐고 다 타버렸다”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이곳엔 일차전지 업체인 아리셀 공장 화재에서 신원 확인이 불가한 시신 4구가 안치됐다. 장례식장 1층 로비 화면엔 ‘당신의 고귀한 삶을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라는 문구만 있을 뿐 사망자의 이름, 나이 등 신원정보는 나오지 않았다. 심지어 유가족조차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공장 전체가 삽시간에 연기에 휩싸였지만 일부 사람들은 가까스로 목숨을 구했다. 당시 품질관리파트에서 일한 A씨는 “처음에 뭔가 큰 소리가 났다. 무슨 일인가 봤더니 전지가 타고 있었다”며 “내부 구조를 잘 알아서 1분도 안 걸려 3층에서 2층으로 몸을 던졌다. 계단이 없어서 걸어서는 못 간다”고 말했다. 현장 책임자인 B씨의 아내는 “남편이 직원 100명을 대피시키고, 연기를 마신 뒤 뛰어내렸다”며 “발 양쪽이 모두 골절됐다. 지금 너무 아파한다. 부기가 가라앉아야 수술에 들어갈 수 있다는데 아직 기약이 없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목격자들은 폭발음에 전쟁이라도 난 줄 알았다고 회상했다. 인근 공장 직원인 호안씨(34)는 “40분 넘게 펑펑펑 소리가 계속 들렸다”고 전했다. 임충혁씨(43)는 “마치 폭죽 소리 같은 게 연쇄적으로 나서 우리 공장도 다 정리하고 피했다”며 “10년 정도 근무하면서 주변에서 이번이 세 번째 큰 불이다. 이렇게 사상자 있었던 건 처음이라 너무 충격적”이라고 밝혔다. 이진무씨(50)는 “원래 공장에서 불이 가끔 난다”며 “외국인들이 많이 일하고 있는데 안타깝다”고 말했다.

경기 화성시 화성유일병원장례식장 1층 로비 화면엔 ‘당신의 고귀한 삶을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가 띄워져 있다. [사진=심성아 기자]

경기 화성시 화성유일병원장례식장 1층 로비 화면엔 ‘당신의 고귀한 삶을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가 띄워져 있다. [사진=심성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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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실종 중 18명은 외국인, 내부 구조 잘 몰라

아리셀 공장에서는 전날 오전 10시31분 불이 났다. 이 불로 22명이 숨졌고, 8명이 중경상을 입었으며, 1명은 연락이 두절됐다. 사망자 및 실종자 23명 중 한국인이 5명, 중국인 17명, 라오스인 1명이다. 한국인 중에는 중국에서 한국으로 귀화한 사람이 1명 포함돼 있다. 현재까지 확인된 사망자 외에 추가 실종자 1명을 찾기 위한 수색은 이어지고 있다. 경기남부경찰청 화성 아리셀 공장 화재 사건 수사본부는 25일 오전 10시30분부터 소방 당국과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국토안전연구원, 고용노동부, 산업안전관리공단 등과 합동 감식을 할 예정이다.


이번 화재는 배터리에서 작은 연기가 올라온 지 15초 만에 공장 전체를 가득 채워 인명피해가 컸던 것으로 잠정 조사됐다. 조선호 경기도소방재난본부장은 이날 오후 8시께 김동연 경기도지사와 현장을 찾아 공장 내부에 설치된 CCTV 영상에 담긴 화재 상황을 설명하며 "처음에는 배터리 부분에서 작은 흰 연기가 올라오기 시작했고 연기가 급격하게 퍼지며 작업실 공간 전체를 뒤덮는 데 약 15초밖에 안 걸렸다. 그 상황에서 작업자들은 처음에는 조금 당황하는 듯하다가 소화기를 가지고 와서 진화를 시도했으나 주변에 리튬이 있다 보니까 소화 능력이 잘 없었던 것 같다"고 밝혔다.


소방 당국에 따르면 사망자의 대부분은 건물 3동 2층의 발화 지점과 이어지는 작업장에서 모여 있는 상태로 발견됐다. 특히 피해자 대부분이 일용직 노동자로 내부 구조에 낯선 점이 피해 규모를 키웠다. 조 본부장은 "2층 출입구 앞쪽으로 대피해주면 인명 피해가 많이 줄지 않았을까 하는데, 이분들이 놀라서 막혀 있는 안쪽으로 대피했다"며 "이곳에서 근무하던 외국인 근로자들 가운데는 용역회사에서 필요할 때 파견받는 형태로 근무하는 경우가 많아 공장 내부 구조에 대해 잘 알지 못했던 것도 피해가 늘어난 요인으로 본다"고 말했다.

아리셀 공장의 상시 근로자 수는 50명 안팎으로 전해졌다. 고용노동부는 산업재해수습본부를 꾸리고, 산업안전보건법·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여부를 수사한다. 노동부는 사고 발생 직후 산업안전보건본부에 장관을 본부장으로 하는 중앙산업재해수습본부(중산본)를 구성했다. 중산본은 행정안전부·소방청·환경부 등 관계 기관과 협조해 근로자 수색, 현장 수습, 피해 지원 등을 총괄 지원한다. 이정식 노동부 장관은 "관계 기관과 협력해 신속히 사고를 수습하고 재해 발생 원인을 최대한 신속하고 엄정하게 수사하라"고 지시했다.

경기 화성시 아리셀 공장 화재 현장에서 소방대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사진=심성아 기자]

경기 화성시 아리셀 공장 화재 현장에서 소방대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사진=심성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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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 어려운 리튬전지, 예견된 인재

아리셀은 리튬 일차전지를 제조·판매한다. 해당 공장은 철근 콘크리트 구조의 연면적 5530㎡ 규모로, 총 11개 동으로 구성돼 있다. 화재가 발생한 곳은 2018년 4월 건립된 3동이다. 이곳엔 리튬 배터리 완제품 3만5000여개가 보관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리튬은 공기 및 열과의 반응성이 높기 때문에 일차전지라도 높은 온도에 노출되거나 수증기와 접촉하면 폭발과 함께 화재로 이어진다. 통상 배터리 화재는 소방수를 분사하는 일반적인 진화 방식으로는 쉽사리 꺼지지 않는다. 겉보기에는 불이 꺼진 것처럼 보이더라도 내부에선 수백도의 열이 계속 발생하기 때문에 언제든 다시 불꽃이 일어날 수 있다. 불이 나면 다량의 불산가스를 발생시키기 때문에 진화 인력의 화재 현장, 건물 내부 진입도 어렵게 만든다.


전문가들은 안전불감증이 낳은 예견된 인재(人災)라고 한목소리를 냈다. 이창우 숭실사이버대 교수는 "이번 사고는 위험물을 포함한 물질을 한 곳에 집적해 쌓아둔 업체의 부주의함이 가장 큰 원인"이라며 "한번 불이 나면 꺼지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적은 수량을 소분해 보관하지 않은 잘못이 크다"고 꼬집었다. 손원배 초당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리튬전지와 같은 자연발화성 물질의 경우 일정한 간격을 두고 적재하는 등 저장 및 취급 기준을 준수해야 한다”며 “안전 기준을 지키지 않을 경우 어디서든 동일한 화재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리튬 전지의 경우 외부 충격으로 이온도가 올라가 화재가 발생하면 불이 다른 배터리에 번져 연쇄 폭발을 일으킬 수 있다"며 "점화원이 될 만한 것들이 닿지 않도록 하고 정전기 발생을 방지하는 등 철저히 관리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화성=심성아 기자 heart@asiae.co.kr
이지은 기자 jelee0429@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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