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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준의 여행만리]올레꾼 떠난 그 자리에 쏟아지는 별을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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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속의 섬, 가파도
자박자박 한라산 담고
느릿느릿 바다를 품고
제주올레길 10-1 코스

올레꾼과 관광객이 떠난 가파도 밤하늘에 은하수가 걸렸다. 사진=조용준 기자 jun21@

올레꾼과 관광객이 떠난 가파도 밤하늘에 은하수가 걸렸다. 사진=조용준 기자 jun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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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파도를 즐기는 관광객들. 사진=조용준 기자 jun21@

가파도를 즐기는 관광객들. 사진=조용준 기자 jun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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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박자박 섬을 걷습니다. 푸른 파도가 출렁이는 바다 건너 한라산이 한없이 포근합니다. 눈길 닿는 곳마다 보리밭이 펼쳐지고 꽃들이 흐드러져 피었습니다. 옅게 드리워진 구름이 운치를 더하고 슬슬 불어오는 바람은 여름날의 더위를 잠시 씻어 줍니다. 마을 건물과 집들은 하나같이 아담하고 단정합니다. 담장에 그려진 벽화는 거친 풍랑에 맞서 고기를 잡고 물질과 밭일을 하며 생계를 이어가는 주민들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섬 속의 섬, 가파도(加波島)로 떠나봅니다. 휴양지로 가꿔진 본섬인 제주도에 비해 아직은 옛 풍경과 경치가 남아 있는 곳입니다. 가파도로 떠나는 여행이 가슴을 설레게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제주 올레길 10-1 코스도 있습니다. 느긋하게 둘러보며 걷다 오기 참 좋습니다.

황금빛 보리밭과 바다 건너 한라산이 지척이다. 사진=조용준 기자 jun21@

황금빛 보리밭과 바다 건너 한라산이 지척이다. 사진=조용준 기자 jun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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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귀포 모슬포항에서 가파도행 여객선에 올랐다. 여기서 가파도까지는 약 5.5km. 여객선으로 15분이면 닿는 거리다. 가파도는 제주 본섬과 국토 최남단 마라도 사이에 놓였다. 전체 면적이 0.9㎢ 남짓한 작은 섬이다. 섬은 지도로 보면 마름모꼴이다. 언뜻 보면 마치 가오리 같다. 해안선 길이가 4.2km에 불과하다. 바람이 세차고 파도가 유난히 거칠다고 해 가파도라 불렸다. 오죽하면 가파도 사람이 돈을 빌리면 ‘가파도(갚아도) 그만, 마라도(말아도) 그만’이라고 했을까.


원래 5월에 열리는 청보리 축제가 유명하다. 하지만 여름에는 보리를 베어낸 밭에 코스모스와 노란 해바라기가 가득해진다. 해안과 마을 말고는 들판 전체가 보리밭이다. 60만㎡(약 18만평) 넓이의 보리밭 지평선이 그대로 수평선으로 이어진다. 가파도의 보리는 ‘향맥’이라는 제주 재래종이다. 일반 보리보다 키가 훨씬 커서 1m를 넘는다. 찾은 날 수확하고 남은 일부 보리는 바닷바람에 일제히 황금빛으로 춤을 추고 있었다. 바람 불 때마다 바다의 파도와 같은 리듬으로 크게 물결친다.

가파도는 걸어도 좋고 자전거를 타도 좋다. 사진=조용준 기자 jun21@

가파도는 걸어도 좋고 자전거를 타도 좋다. 사진=조용준 기자 jun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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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에 일렁이는 황금보리밭. 사진=조용준 기자 jun21@

바람에 일렁이는 황금보리밭. 사진=조용준 기자 jun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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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동 선착장에서 왼쪽으로 길 머리를 잡는다. 자박자박 걷다 보면 ‘6개의 산’이라는 이정표를 만난다. 제주의 산 7개 가운데 영주산을 제외한 한라산·산방산·송악산 등 6개의 산을 볼 수 있다는 곳이다. 제주의 가장 낮은 땅에서 가장 높은 한라산을 조망하는 경험은 특별하다. 남쪽에는 마라도가 떠있다.

섬 중심부에 소망전망대라고 이름 붙은 전망대가 있다. 이곳에 서면 봄이면 청보리가 여름이면 해바라기, 가을이면 코스모스가 넘실거린다. 어디 그뿐인가. 나지막한 지붕을 맞댄 옛집들이 올망졸망 모여 있고, 푸른 바다 너머로 한라산이 눈앞에 선명하다. 어 디 한 곳 막힘없이 탁 트인 시야와 병풍처럼 둘러 쳐진 전망이 말 그대로 기가 막히다.


선착장이 있는 상동포구부터 반대편 가파포구까지, 섬을 가로질러 놓인 길은 소박한 풍경의 연속이다. 전망대를 지나 마을 안길로 접어들면 가파초등학교가 나타난다. 섬에 있는 유일한 학교로 1922년에 설립된 오래된 역사를 갖고 있다.


길 끝은 섬 반대편인 가파포구다. 여기서부턴 올레길 표식을 따라 해안길을 따라간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본섬의 산들이 나란하게 펼쳐있거나 겹쳐지고, 때로는 마주 보기도 한다. 시선에 따라 변하는 그림이다.

마을길을 걷고 있는 관광객들. 사진=조용준 기자 jun21@

마을길을 걷고 있는 관광객들. 사진=조용준 기자 jun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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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객들이 가파도 올레길을 걷고 있다.  사진=조용준 기자 jun21@

관광객들이 가파도 올레길을 걷고 있다. 사진=조용준 기자 jun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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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파도 소망전망대를 비롯해 어느곳에 서도 일출과 일몰을 동시에 볼 수 있다. 사진=조용준 기자 jun21@

가파도 소망전망대를 비롯해 어느곳에 서도 일출과 일몰을 동시에 볼 수 있다. 사진=조용준 기자 jun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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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레길을 따라 걷다 보면 깊은 평화와 고요에 안겨있는 느낌이 든다. 제주의 가장 낮은 땅, 청정 가파도에서 아주 천천히, 여유롭게 거닐어 본다. 걷기에 이만한 곳도 없다.

가파도 돌담은 특이하다. 제주도는 대부분 검은색 현무암으로 담을 쌓지만 이곳은 바닷물에 닳은 마석(磨石)을 쓴다. 바닷돌 하나하나가 훌륭한 수석인데, 환경보호 문제로 제주도 밖으로 가져갈 수는 없다. 집담과 밭담은 제주도의 다른 곳보다 성글게 쌓았다. 가파도 센 바람이 숭숭 뚫린 구멍으로 지나가기 때문에 잘 무너지지 않는다. ‘섬 시인’ 강제윤은 가파도 돌담은 ‘바람의 방어막’이 아니라 ‘바람의 통로’라고 썼다.

해안도를 따라 자전거를 타는 관광객. 사진=조용준 기자 jun21@

해안도를 따라 자전거를 타는 관광객. 사진=조용준 기자 jun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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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 걸린 한라산이 운치 있다. 사진=조용준 기자 jun21@

구름 걸린 한라산이 운치 있다. 사진=조용준 기자 jun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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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 촬영지를 알리는 작은 푯말도 보인다. 젊은 선장인 정준(김우빈)과 해녀 영옥(한지민)이 둘만의 여행을 떠났던 장면이다. 마침 그들처럼 자전거를 탄 한 쌍의 연인이 곁을 스쳐간다.


섬 한 바퀴를 돌고 나니 다시 선착장 앞이다. 식당과 카페들이 몇몇 늘어서 있다. 문득 텐트에서 하룻밤 묵고 갈까, 라는 생각이 든다. 즉흥적인 행동이 여행의 또 다른 묘미다. 바로 행동으로 옮긴다. 동쪽 해안길을 따라 15여분 걸어가면 가파도 유일한 캠핑장인 태봉왓캠핑장 팻말이 나온다. 이곳에서 한라산과 바다를 바라보며 하룻밤을 맡겨볼 참이다. 올레꾼과 관광객이 썰물처럼 모두 떠나간 가파도의 밤하늘 아래서 쏟아지는 별을 헤어봐야겠다.


◇여행메모

△가는법= 가파도 가는 배는 서귀포 모슬포항에서 운항한다. 포털사이트에 ‘마라도가파도 정기여객선’을 검색하거나 ‘가보고 싶은 섬’ 앱을 내려 받아 예약하면 된다. 요금은 왕복기준 성인과 청소년 1만8000원, 초등학생 9000원. 배편 10%는 현장발매 분량으로 남겨놓기에 현장에서도 승선권을 구입할 수 있지만 성수기는 긴 줄을 서는 고생을 각오해야 한다. 신분증은 승선객 모두 반드시 지참해야한다.

가파도행 배와 가파도 안내도. 사진=조용준 기자 jun21@

가파도행 배와 가파도 안내도. 사진=조용준 기자 jun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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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레길=가파도는 올레길 10-1 코스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선착장에서 서쪽 해안길을 돌다 섬 안쪽을 가로질러 다시 동쪽 해안을 따라 가파포구까지 오게 된다. 올레길 완주는 2시간 정도 걸리지만 시간을 더 넉넉히 잡길 권한다. 가파도에선 꼭 올레길만을 따라 걸을 필요는 없다. 올레길로 향하는 사람들과 반대로 걷는것도 가파도를 즐기는 또 다른 방법이다. 막다른 길 끝 작은 가옥과 돌아 나오며 만나는 수평선처럼, 결국 어디를 가더라도 모두 가파도의 풍경들이다. 섬이 크지 않아 외려 이정표가 없는 곳도 돌아봐야 올레길이 아닌 가파도를 다녀온 것이라 말할 수 있다. 자전거로 다녀도 좋다. 길이 평탄해 아이들도 부담이 없다. 선착장에 자전거 대여소가 있다.





가파도(제주)=글 사진 조용준 여행전문기자 jun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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