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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비비] 저출생 그리고 인센티브의 배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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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센티브는 선의를 자주 배신한다. 한 유치원에서는 부모들이 자녀를 늦게 데리러 오는 일이 잦았다. 유치원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벌금이라는 인센티브를 도입했다(특정 결과를 유도하기 위해 벌금을 부과하는 것도 인센티브의 유형이다). 어찌 된 일인지 부모들은 더 늦게 오기 시작했다. 늦었다며 면목 없어 하던 부모들도 점점 사라졌다. 부모들이 벌금을 비용으로 인식했기 때문이다. 돈(벌금)을 냈으니 아이를 늦게 데리고 가든 말든, 아이를 케어하는 것은 당신(유치원)의 비즈니스라는 것이다. 마이클 샌델의 책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에 나오는 이스라엘 유치원의 사례다.


국민권익위원회는 지난 4월 ‘자녀 1인당 현금 1억원 지급’을 놓고 대국민 설문조사를 했다. 최근 부영그룹에서 출산지원금으로 직원에게 1억원을 지급한 사례를 언급하면서 정부 지원의 예시로 든 것이다. 응답자 63%는 "부영 모델의 출산 장려 효과에 동의한다"고 답했다. ‘인구소멸’ 위기에 처한 지방자치단체들은 이미 현금 살포 경쟁에 들어섰다. 경남 거창군은 출생아 1인당 1억1000만원을, 인천시는 인천에서 태어나는 모든 아이에게 만 18세가 될 때까지 총 1억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저출생으로 발등에 불이 떨어진 국가는 한국만이 아니다. 일·가정 양립 정책, 높은 성평등 의식, 철저한 보육지원 등으로 유명한 나라, 핀란드. 전 세계 저출생 국가들이 앞다퉈 찾던 나라다. 그러나 현재 핀란드의 출산율도 바닥을 모르고 떨어지고 있다. 지난해 출산율은 1.26명으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유럽·북미 국가 중에 저출생을 걱정하지 않는 나라는 없다. 추락의 가속도만 다를 뿐이다. 지난 4월 기획재정부 중장기전략위원회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비교 분석에 따르면 현금 지원 성격의 가족 대책과 출생률 간에는 상관관계가 거의 없었다.


[시시비비] 저출생 그리고 인센티브의 배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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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를 돈으로 늘릴 수 있다는 생각은 위험하다. 1960년대 독재자 니콜라에 차우셰스쿠 치하의 루마니아는 인구와 노동력을 늘리기 위해 출산율 대반등 정책을 실시했다. 낙태와 피임을 금지하고, 자녀가 없는 성인에겐 독신세를 부여했다. 유자녀 가구에게 각종 재정적 혜택과 주택 지원 등을 제공했다. 1.9명이던 출산율은 1년 만에 3.66명으로 급상승했다. ‘인구 혁명’은 오래가지 못했다. 고아원이 붐비기 시작했다. 임신을 원치 않던 여성들은 뒷골목 불법 낙태 시술소로 내몰려야 했다. 정책은 폐기됐고 출산율은 다시 떨어졌다.


정부는 지난 1일 ‘인구전략기획부(인구부)’를 신설하겠다고 공식 발표했다. 인구문제를 전담하는 부처로, 앞서 지난달 19일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저고위)가 발표한 '저출생 추세 반전을 위한 대책'을 실현해야 한다. 앞서 여러 정부가 추진해온 ‘백화점식’ 저출생 대책에서 벗어나 ‘일·가정 양립, 양육, 주거’를 3대 핵심분야로 정하고 역량을 모으기로 했다는 점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럼에도 낙관은 쉽지 않다.

N포세대, 욜로(YOLO), 딩크(DINK) 등의 용어는 비록 낡았지만 여전히 청년 세대를 관통하는 용어다. 삶을 대하는 태도 자체가 달라졌고 가족이라는 규범과 기능에 의문을 가진다. '아이가 있는 삶'에 대한 상상도는 지옥도에 가깝다. 노키즈존 속에서 겨우 키워낸 아이는 영어 유치원에 바래다주고, 입시지옥·통근지옥으로 떠밀어야 한다. '주거지 계급도'를 펼쳐놓고 '빌거(빌라 거지)'가 되지 않기 위한 투쟁, '상급지 아파트'로 이동하기 위한 총력전도 병행해야 한다. 초고경쟁 사회는 빠른 성장과 함께 반출생주의라는 쌍둥이를 낳았다. 당근과 채찍이라는 인센티브, 그 이상이 필요하다. '태어날 아이는 우리보다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다'라는 확신을 줘야 한다. 그렇지 않고 현금성 인센티브로 늘어난 인구는 그저 인신매매일 뿐이다.





김동표 콘텐츠편집2팀장 letmei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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