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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매달 10% 배당"…서울에서 일본까지 출장 영업[코인사기공화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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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기획 <코인사기공화국-그들은 치밀했다>

②-⑴다단계 사기 사건의 영업행태 재구성
센터 개소식 때 제주 전 시장이 와서 축사
출금 막히자…외국 본사 지시라며 발뺌

"인터코인캐피털(Inter Coin Capital)은 귀하가 앞장서서 무제한 자산으로의 여행을 시작할 수 있도록 도와드립니다!"


"ICC는 6월(2019년), 전 세계 2888명의 운 좋은 회원들에게 ICBX 초기 코인 1000개를 기부할 것입니다. 먼저 그 기회를 잡으십시오."

2019년 9월5일 제주시 도두항 블루시티 파크 1층에서 ICC 제주 센터 개소식이 열렸다. 이 자리에 박영부 전 서귀포시장이 참석해 축사를 하고 있다. (제공: ICC 피해자 단체)

2019년 9월5일 제주시 도두항 블루시티 파크 1층에서 ICC 제주 센터 개소식이 열렸다. 이 자리에 박영부 전 서귀포시장이 참석해 축사를 하고 있다. (제공: ICC 피해자 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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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백억 원대 사기 혐의로 재판 중인 조모씨가 투자자들을 유치하기 위해 ICC 사이트에 홍보한 내용이다. ICC는 외국에 본사를 둔 자산관리업체 행세를 했고, 사기 행각은 1년여에 걸쳐 지속됐다. 이 과정에서 수백 명이 피해를 봤다. 이들은 1년이란 시간 동안 어떻게 수많은 사람을 속일 수 있었을까.

아시아경제는 수백억 원대 규모의 ICC 사건의 공소장, 고소장, 피해자 인터뷰 등을 통해 다단계 코인 사기 사건의 영업행태를 재구성했다. ICC 핵심 주범들이 저지른 또 다른 사기 사건들 역시 업체 간판만 바꿨을 뿐 피해자들을 끌어들이고 투자를 종용하는 수법은 판에 박힌 듯 똑같았다. 이들의 사기 수법은 일번사업자·지역센터 설립→투자자 유치→먹튀 전 고수익·고배당 프로모션 진행→사이트·전자지갑 폐쇄→잠적 등과 같은 패턴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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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에서 ICC 사기 수법 국내로 들여와…수익률·입출금 내역 조작

2018년 7월. 조선족 여성인 조씨는 서울 관악구 빌딩에 사무실을 빌려 ICC 서울본부(사당)를 열었다. 조씨는 한국지사 대표·회장이라는 직함을 달고 국내에서 ICC 사기 작전에 관여했다. 말레이시아 중국계인 두 명의 공모자와 함께였다.


조씨 일당은 투자자를 모으기 위해 서울을 비롯한 전국 10여개에 영업소를 세웠다.

조씨 일당은 투자자를 모으기 위해 서울을 비롯한 전국 10여개에 영업소를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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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씨는 일번사업자(본점이란 의미)를 연 이후 서울본부(교대)를 비롯해 경북 구미, 인천 송도, 경남 마산, 부천 송내, 경기 안산, 대전, 울산, 부산 등에 '센터'라고 불리는 영업소를 개설했다. 지역 센터에선 상위모집책을 포함해 5~6명이 팀을 이뤄 움직였다. 센터를 두지 않은 일본에선 조씨가 직접 투자설명회를 주도했다.

지역 센터에서 본격적으로 영업활동을 개시한 조씨 일당은 투자자들에게 "가상화폐를 ICC에 위탁하면 자체 개발한 인공지능(AI)을 이용한 재정거래(거래소 간 실시간 가격 차이를 활용한 매매)를 이용해 매일 0.333%씩, 한 달에 약 10%의 배당금을 지급한다. 위탁한 가상화폐는 언제든지 인출할 수 있다"고 소개했다. 과거 옥 장판 등 물품을 주로 팔던 다단계 영업이 디지털 금융 기술과 결합해 신종 다단계 사기 형태로 진화된 셈이다. 또 "10명을 추천하면 추천한 사람에게 8%의 배당금을 추가 지급한다"고 꼬드겼다. 이 같은 추천인 제도는 다단계 영업의 전형적인 투자자 유치 방식으로 신규 투자금으로 기존 투자금을 반환하는 돌려막기 구조를 가능케 한다.


ICC는 투자자 유치를 위해 홍보한 내용. (제공=ICC 피해자 단체)

ICC는 투자자 유치를 위해 홍보한 내용. (제공=ICC 피해자 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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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C를 비롯한 코인 사기 조직은 하나같이 본사가 외국에 있다고 홍보했다. 외국에 있는 본사를 직접 가보지 않는 한 이를 확인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ICC의 경우 미국 캘리포니아에 본사를 둔 글로벌 기업이라고 소개하며 "전 세계 200개 거래소와 연동해서 수익을 올리고 있으며 전 세계에 16개의 센터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는 향후 전자지갑과 사이트를 폐쇄한 뒤, 본사에 이 같은 책임을 떠넘기기 위한 계산된 전략이었다.


투자를 주저하는 사람들을 꾀기 위해 조씨 일당은 네이버밴드, 카카오톡, 텔레그램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이용해 수십 개의 홍보 영상을 제작해 올렸다. 주요 지역을 순회하며 투자세미나를 표방한 모임을 열기도 했다.


조씨가 세운 것으로 추정되는 에프브이피트레이드(FVP)는 2022년 5월 서울 워커힐 호텔에서 1000명이 넘는 사람들을 초대해 1주년 행사를 자축하기도 했다. 조씨는 이 자리에서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변호사(조씨 변호사)가 FVP는 '합법'이라고 했습니다."


서울 워커힐 호텔에서 연 'FVP 1주년 행사' 초대장. 피해자들에 따르면 이날 행사에만 1000명이 넘게 몰렸다고 한다. (제공:FVP 피해자 단체)

서울 워커힐 호텔에서 연 'FVP 1주년 행사' 초대장. 피해자들에 따르면 이날 행사에만 1000명이 넘게 몰렸다고 한다. (제공:FVP 피해자 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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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9월 제주 센터를 열었을 땐 지역 유력 인사가 왔다. 아시아경제 취재에 따르면 당시 박영부 전 서귀포시장이 개소식에 참석해 축사를 했다. 조씨 일당과 나란히 선 사진을 본 피해자들은 당시를 떠올리며 말했다. "믿을 수밖에 없었다"고. 지역 유력 정치인이 센터 개소식에 자리할 정도면 ICC를 믿고 투자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고 했다. 이에 대해 박 전 시장은 "제주 센터장인 신모씨의 지인을 통해 참석하게 됐다"며 "조모씨와는 직접적으로 알지 못한다"고 해명했다.


조씨 일당은 ICC 회원 자격을 얻은 투자자가 코인을 위탁하면 맡긴 잔액이 표시되는 전자지갑을 투자자 휴대폰에 다운로드하도록 했다. 투자자들은 전자지갑에 찍힌 수익률과 배당금을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물론 이는 조작된 것이었다. FVP의 경우 사이트(애플리케이션)를 갑자기 닫기 전까지 매일 수익금을 지급했다.


1억원 가까이 피해를 본 김주연씨(가명)는 "입금한 돈이 FVP 계좌에 안전하게 예치돼 있다는 일종의 '투자 증서'를 발급해줬다"며 "만약 1000달러를 인출하고 싶다고 하면 FVP에서 1000달러 규모의 트론 코인을 제 명의의 업비트 계좌로 보내줬다. 사이트가 폭파되기 전까지 이를 팔아 현금화할 수도 있었다"고 전했다.


공소장에 따르면 조씨 일당은 2019년 7월부턴 '로얄클럽'이라는 명칭의 새로운 배당 구조를 도입한다. 위탁금액에 따라 등급을 나눠 배당금을 달리 주겠다고 한 것이다. 조씨 일당이 먹튀하기 3개월 전이었다.


ICC 최소 가입 금액은 1000달러였다. 조씨 일당으로선 이렇게 해서 모인 금액이 성에 차지 않았다. 더 많은 돈을, 더 빨리 빨아들이고 싶었다. 그래서 이러한 배당 구조를 신설한 것으로 보인다. 당시 조씨 일당은 로얄 등급이 되면 크루즈 유람선 여행을 시켜주고, 페라리 승용차, 롤렉스 시계를 주겠다고 했다. 또 ICC가 미국 나스닥에 상장되면 투자금과 별도로 같은 금액의 주식도 배당하겠다고 분위기를 띄웠다. 카드도 발급해준다며 실물카드 사진을 온라인에 올렸다. 사실이 아니었다. 조씨 일당은 이 같은 프로모션을 8월30일까지 실시한다고 했다가 해당 날짜가 다가오자 프로모션 날짜를 9월30일로 연장하기에 이른다.


"위에 나열된 혜택을 받은 사람은 한 명도 없을 거예요. 카드요? 구경도 못 했습니다. 그 전에 돈 들고 날랐으니까요." ICC 피해자 대표인 오영식씨(가명)가 분통을 터뜨렸다.


조씨 일당이 선전한 ICC 카드.(제공=ICC 피해자 단체)

조씨 일당이 선전한 ICC 카드.(제공=ICC 피해자 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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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하지 않은 본사 폐쇄로 인출 막혀…투자자 자산 0원

'알림:ICC의 자금 동결 정보.'


2019년 9월 중순, 갑자기 알람이 떴다. ICC 사이트와 전자지갑을 닫는다는 내용이었다. 인출이 막혔고 전자지갑에 표시된 투자자 개인자산은 모두 '0'이 됐다. 투자자들은 원금이라도 건지려고 백방으로 뛰어다녔지만 조씨 일당은 '본사의 결정'이라는 변명으로 일관했다. 하지만 고소장에 따르면 애초 ICC 본사 같은 건 존재하지도 않았다. 피해자인 박지수씨(가명)가 사기 사건이 터진 후 조씨 일당이 미국에 있다고 주장한 ICC 본사를 직접 찾아간 결과 본사가 있다는 건물엔 외부에 임대가 되지 않는 캘리포니아 은행(BANK OF CALIFORNIA)이 자리하고 있었다.


공소장에도 ICC의 실체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내용이 나온다. 2024년 4월에 작성된 공소장엔 "로만 아라얀(ICC 최고경영자(CEO)로 소개)을 비롯한 경영진들이 일시에 자취를 감춤에 따라 투자자들이 보유하고 있던 자산의 인출이 불가능해졌고, 기업의 실체, 로만 아라얀 등 경영진의 실제 인적 사항과 그들이 수행한 실제 역할, 투자자들이 보유한 가상화폐의 행방이 모두 불분명한 상태"라고 적혀 있다.


조씨 일당은 약 1년의 작전 끝에 137명의 투자자로부터 투자금 명목으로 114억원 상당의 현금 또는 코인을 받아 챙겼다(2023년 1월 공소장 기준). 하지만 전체 피해자의 0.5%만 고소에 참여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피해자 수와 피해 금액은 수천억 원에 이를 것으로 ICC 피해자 모임은 추산하고 있다.


재판 중인 조씨는 여전히 자신의 혐의없음을 주장한다. 조씨 변호를 맡은 위법률사무소 이수원 변호사는 "조수연님은 ICC와 FVP의 설립과 운영에 관여한 사실이 없으며 수사와 재판에서 분명히 말씀드리고 있고, 수사에서도 조수연님이 설립 및 운영에 관여한 정황이나 증거가 발견되지 않아 공소사실에도 피고인이 ICC와 FVP를 잘 알지 못한다고 되어 있다"며 "고소인들의 일방적 주장일 뿐이고 그렇게 믿고 싶은 거 같다"고 밝혔다.


서울중앙지검은 2023년 1월 이 사건의 국내 주범으로 지목된 조씨를 ICC 사건과 관련해 유사수신행위규제법 위반과 사기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이후 올해 4월 서울중앙지검은 FVP 사기 혐의까지 보태 조씨를 추가 기소한 상태다.

조씨 일당은 자금을 동결하기 전 프로모션을 대대적으로 진행해 대규모 자금을 유치했다. (제공:FVP 피해자 단체)

조씨 일당은 자금을 동결하기 전 프로모션을 대대적으로 진행해 대규모 자금을 유치했다. (제공:FVP 피해자 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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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받으면서도 또 사기 쳐…지금도 투자자 모으고 있는 공범들

조씨를 비롯한 사기단 일당은 사기행각을 멈추지 않았다. 조씨는 2021년 4월 FVP를 설립한 혐의를 받고 있다. ICC 사기 건으로 수사를 받는 동안 또다시 사기범죄를 저지른 것이다. 투자자를 모으는 방식은 ICC와 유사했다. 이렇게 이들은 2021년 4월부터 2022년 7월까지 피해자 총 80명으로부터 263억원을 편취했다.


조씨뿐만이 아니다. 앞서 거론된 두 사건에서 상위모집책으로 고소장에 이름이 적시된 김모씨는 현재 네이버 밴드에 코인 투자 사이트를 개설해 투자자들을 모으고 있다. 이 사이트의 내부고발자에 따르면 5월1일 기준 김모씨는 투자자로부터 1000억원가량의 투자금을 유치한 것으로 파악됐다.


일각에선 투자 사기로 수사선상에 오른 인물은 적어도 유사 행위를 하지 못하도록 제재를 가해야 한다고 말한다. 손쉽게 투자 관련 온라인 커뮤니티를 개설하지 못하도록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는 무죄추정의 원칙에 반하는 조치이므로 사실상 쉽지 않다.


조재빈 법무법인 바른 가상자산 형사대응팀장은 "원칙적으로 수사와 재판이 종결될 때까지는 무죄가 추정되므로 사법적 조치를 하는 것이 쉽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면서 "다만 금융당국이나 수사기관 내에서 코인 관련 범죄의 정보를 분석하고 적발하는 조직이 코인 관련 피의자와 연루자들의 정보를 공유한다면, 동일한 피의자나 조직에 의한 비슷한 코인 사기 등 범죄를 엄단하고 방지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예전에 조직폭력배를 엄단할 때 검찰 경찰 등 수사기관에서 축적된 데이터를 활용해 수사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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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보받습니다>

'가상자산 투자사기'에 대해 심층 취재 보도할 예정입니다. 코인 범죄 근절을 위한 종합 대응 방안 마련을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제보(lsa@asiae.co.kr) 부탁드립니다. 끝까지 취재해 보도하겠습니다.


<특별취재팀> ▲팀장 이선애 부장 △김민영 차민영 김대현 황윤주 기자





김민영 기자 argus@asiae.co.kr
차민영 기자 blooming@asiae.co.kr
황윤주 기자 hyj@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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