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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 발생 5년’ 정신과 치료에 암 재발까지…처참했다[코인사기공화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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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기획 <코인사기공화국-그들은 치밀했다>

③-⑴암 재발하고도 이자 갚으려고 운전대 잡아(피해자들 단독 인터뷰)
노후에 친구 돈까지…2억8000만원 날려
코인 사기로 노후파산·가정붕괴까지

‘사기 발생 5년’ 정신과 치료에 암 재발까지…처참했다[코인사기공화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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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해서 시작한 투자였다. 울산에 사는 50대 이정숙씨(가명)는 5년 가까이 침샘암 투병 생활을 했다. "아프다 보니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라꼬, 몸이 아프니깐 병원비도 나가고 그래서…그런데 역효과가 나서…." 지난 9일 아시아경제와 인터뷰한 이씨는 더는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2019년 5월 당시 인터코인캐피털(Inter Coin Capital) 울산센터장이었던 심수영(가명)을 통해 만기된 적금과 대출받은 돈을 합쳐 8000만원을 투자했다. 2020년 5월4일 있었던 3차 반감기를 전후로 비트코인 가격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던 때였다.


"처음엔 이자를 쳐서 준다카이 맡겼어예. 돈 가지고 있는 거 맡기면 여행도 보내주고 배당도 주고 나스닥에 상장되면 주식도 준다케가 덜컥 돈을 넣었심더."

투자한 지 4개월이 됐을 때 사기당했단 걸 알았다. 울산 센터에 하루에도 수십 통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거는 손이 덜덜 떨려 전화번호를 잘못 눌렀다. 겨우 연락이 닿자 ICC 관계자는 "서버가 업그레이드 중"이라고 둘러댔다. 처음엔 그 말을 믿었다. "계속 기다렸는데 불안한 생각이 들데요. 온종일 사이트만 들락날락 거렸지 머." 울산센터장과 ICC 한국 총책으로 알려진 조씨(ICC 사기 사건 핵심 주범으로 지목된 인물)에게도 연락을 취했지만 묵묵부답이었다.


‘사기 발생 5년’ 정신과 치료에 암 재발까지…처참했다[코인사기공화국] 원본보기 아이콘

ICC가 예고 없이 사이트와 전자지갑을 닫기 전 그는 2019년 9월 제주도 새마을금고 연수원에서 열린 'ICC 1주년 기념행사'에도 다녀왔다. 부산과 대전에서 열린 투자설명회에도 갔다.


"울산에서 설명회할 땐 조씨랑 딸이 다 왔었어예. 제주에서 열린 일주년 행사 땐 일본·중국· 인도 등에서 왔다면서 외국 사람들도 오고 행사를 크게 했어예. 행사 끝나고 얼마 안 있다가 사이트를 갑자기 막아버려서 다들 황당했다아입니꺼."

그렇게 5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투자하기 위해 대출받은 돈은 또 다른 대출을 통해 돌려막았다. 그는 이자만 겨우 갚고 있다. 남편은 사기당한 사실을 모른다고 했다. 이씨는 인터뷰 내내 "남편과 시댁이 알면 안 된다"며 노심초사했다.


그를 가장 힘들게 한 것은 지인들에게 ICC를 소개한 것이었다. "똑바로 알지도 몬하면서 지인들한테 소개하고. 결과가 안 좋으니까네

내가 너무나도 미안하고 죄송스러버가꼬." 그는 인터뷰 내내 '죄송스러버가꼬'란 말을 반복했다.


혼자 끙끙 앓던 그는 불면증에 시달렸고 스트레스로 말이 점점 더 어눌해졌다. 그리고 2019년 말 침샘암이 재발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1차 암 수술 후 5년간의 투병 끝에 완치를 바라보고 있던 해였다. "삶을 포기하려 했다'는 그는 가족의 설득에 못 이겨 2019년 말 재수술을 했다.


"요양해야 하는데 재작년 9월부터 장애인 활동 보조 일을 합니더. 아이들 케어하고 운전해서 델따주고. 나가는 돈이 있다 보니깐 이거라도 해야지예."


한국사기예방국민회가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11개월째 천막 농성을 벌이고 있다. (사진=김민영 기자)

한국사기예방국민회가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11개월째 천막 농성을 벌이고 있다. (사진=김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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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 소개했다가 1억8000만원 물어줘…조씨 같은 사기 집단 사회에서 격리해야

올해 75세인 김성용씨(가명)는 2019년 6월 초 제주도에 출장 갔다가 코인 투자에 발을 들이게 됐다. 당시 제주센터장이던 신성훈(가명)이 센터에서 직접 ICC에 대해 설명하고 투자를 권유했다.


처음엔 3000만원을 투자했다. 사업 자금으로 쓰려고 통장엔 항상 현금이 들어있었다. 이것이 화근이 됐다. 이후 7000만원을 추가로 집어넣었다. 사업에 쓸 돈을 끌어다 쓴 것이었다. "ICC에서 재정거래를 통해 수익을 낸다고 홍보하는데 그 말이 일리가 있다고 느꼈어. 김치 프리미엄이다(해외보다 국내에서 비트코인이 더 비싸게 거래되는 것) 뭐다 한창 말이 나올 때였거든. 내가 서울 사당 본부에도 여러 번 갔었어. 이것들이 장난질 하나 안 하나 확인하려고 말이야."


김씨는 친구들 6명에게 ICC를 소개했다. 6명이 투자한 돈은 총 1억8000만원. 그는 ICC가 약속대로 돈을 돌려주지 않자 친구들이 투자한 돈 대부분을 물어줬다. "친구들이 나를 믿고 (ICC에) 그 돈을 맡긴 거잖아." 김씨는 본인이 투자한 1억원에 친구들 투자금까지, 총 2억8000만원을 사기 조직에 뜯겼다.


그는 1970년대에 대림산업과 경남기업에 취직해 10년간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일했다. 국내 유명 놀이공원을 지을 당시 현장소장을 맡기도 했다. 30년 가까이 현장 밥을 먹고 50대 초반에 개인 사업을 시작했다. 경기도에서 20년 넘게 자동차 부품 관련 업체를 운영하며 나름대로 사업에도 잔뼈가 굵다고 자부했던 그였다.


"이런 사기를 당할 줄 몰랐지. 그나마 나는 사업을 오래 했기 때문에 그럭저럭 견뎌. 그래도 3억원 가까운 돈을 날렸으니 타격이 크지. 투자하느라 갖다 쓴 사업자금 대출금까지 합하면, 한 달에 내는 이자만 600만원이야. 집사람? 집사람은 어렴풋이 알지 자세히는 몰라."


그는 ICC로 피해당한 사람들 대부분이 자포자기 상태라고 전했다. 그도 그럴 것이 ICC 사기 사건이 터진 지 5년이 지났지만 핵심 주범으로 지목된 조씨 재판은 이제 겨우 1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나야 힘들게 일어선 세대잖아. 내가 투자 잘못해서 이 꼴이 됐다고 생각하고 다시 일하고 말지. 가정이 파탄 난 사람도 많아. 은행 돈 땡기고 주위 친구까지 소개하고 어떻게 감당해. 집에만 처박혀 있고 인생 포기한 친구들도 여럿 봤어."


김씨의 말은 과장된 것이 아니다. 한국사기예방국민회는 서울경찰청 등 국가 기관에 보낸 탄원서에 "ICC의 최초 사건 발생은 2018년이며 지금까지 피해자들은 피눈물을 흘리며 여기까지 왔다"며 "그동안 극단적인 선택을 하신 분들, 정신과 치료를 받는 분들, 항암치료를 받는 분들 등등 사기 피해의 후유증은 이루 말할 수가 없을 정도로 처참하다"고 호소했다.


올해 4월 에프브이피트레이드(FVP)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사기)·유사수신행위의 규제에 관한 법률 위반 등으로 고소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한 김민정씨(가명)는 "코인 사기를 당해 빚더미에 앉는 바람에 돈 벌러 나간 사람들이 많다 보니 앞장서서 고소인들을 모으고, 경찰 조사에 응하고 할 사람이 거의 없다"면서 "나도 ICC 사기 주범들이 또 다시 모의한 FVP에 1억원 가까이 물려 제정신이 아니다. 그런데 농성 천막에서 11개월째 집에도 못 들어가고 버티고 있는 어르신들을 보면 불쌍하다는 생각밖에 안 든다. 그래서 내가 총대 메고 이 일(소송)에 매달린 것"이라고 했다.


김씨는 조씨 같은 사기 집단을 하루빨리 단죄해 사회에 발을 못 붙이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조씨 같은 인간은 사회에서 격리해야 해. 우리 같은 개인은 못 해. 국가 공권력은 가능하겠지. 지금도 서울 강남 테헤란로에 가면 사기 집단들이 쫙 깔렸어. 이 사기꾼들 그냥 놔두면 우리나라 미래? 불 보듯 뻔한 것 아냐."


김씨는 '코인의 코자도 쳐다보기 싫다'라며 자기가 바보였다고 자책했다. "고수익 난다는 말을 믿으면 안 돼. 고수익 이야기하면 그건 사기 100%야." 75세 노인의 뼈아픈 충고였다.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앞에 코인 사기 피해를 알리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사진=김민영 기자)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앞에 코인 사기 피해를 알리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사진=김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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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파산 30%는 코인 사기 때문…사기 피해 후유증 '가족해체·노후파산'

전문가들은 코인 사기가 단순히 개인 자산의 피해에 그치지 않는다고 경고한다. 사기당한 피해자 대부분이 가족과 갈등을 겪고, 일부는 외부와의 관계를 일절 끊는 사회적 고립을 자처하기도 한다. 고령의 피해자는 젊은 연령대의 피해자보다 재기가 어렵다는 점에서 '노후파산'이라는 더 심각한 문제를 유발한다.


윤정원 대한법률구조공단 서울개인회생·파산종합지원센터장은 아시아경제와의 인터뷰에서 "노령파산의 경우 다시 시작할 시간이 없고, 다시 경제력을 회복하기 위한 일자리 등 소득원이 없고, 심리적 충격으로 건강도 나빠져 치료비 등 생계비도 증가한다"며 "가족들과 사이가 좋지 않아져 가정붕괴(이혼·자녀와 의절)가 되는 악순환이 된다"고 지적했다.


실제 서울회생법원 홈페이지의 '2023년 개인파산사건 통계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50세 이상 채무자 비율이 76.96%로 대부분을 차지한다. 투자 실패 또는 사기 피해 비율은 2019년 2%에서 2023년 12%로 급증했는데 이 중 코인사기가 차지하는 비중은 20~30% 수준일 것으로 추정된다.


윤 센터장은 "고수익, 고배당을 미끼로 확정수익보장을 내세우는 금융상품을 빙자한 사기, 다단계 사기, 코인 등 가상자산 연동으로 일확천금이 가능하다고 기망하는 사기 등이 있었으며, 코인 사기가 차지하는 비중은 정확한 통계는 없으나, 체감상 20~30% 정도로 느껴진다"고 전했다.


문제는 초고령화 시대를 앞두고 노인인구 자체가 늘어나므로 노령파산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결국 코인 사기로 피해자들이 경제적 약자가 되고, 이런 사람들이 늘어날수록 국가의 복지 비용도 증가할 수밖에 없다. 국가의 재정 부담이 커지는 것이다.


윤 센터장은 "사기로 파산한 고령자의 경우 결국 기초생활수급대상자가 되어 정부가 제공하는 수급비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데, 이는 곧 현재 세금을 부담하는 국민에게 큰 부담이 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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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보받습니다>

'가상자산 투자사기'에 대해 심층 취재 보도할 예정입니다. 코인 범죄 근절을 위한 종합 대응 방안 마련을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제보(lsa@asiae.co.kr) 부탁드립니다. 끝까지 취재해 보도하겠습니다.


<특별취재팀> ▲팀장 이선애 부장 △김민영 차민영 김대현 황윤주 기자





김민영 기자 argu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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