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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속 인물]"정치는 우리 역할 아니다" 美·中 사이에 낀 ASML 신임 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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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토프 푸케 CEO, WSJ와 인터뷰
4월 취임…"갑자기 지정학이 중요해져"
中 제한에 반대 입장…"막을수록 뭉쳐"

"우리의 역할은 정치하는 게 아닙니다.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를 결정하는 게 아니에요."


네덜란드 반도체 장비 업체 ASML의 크리스토프 푸케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공개된 월스트리트저널(WSJ)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미국과 중국이라는 강대국 간에 반도체 패권을 둘러싼 '고래 싸움'에 낀 '새우'가 된 ASML의 수장이다. 첨단 반도체 생산을 위해 꼭 필요한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를 만드는 세계 유일 기업인 만큼 ASML은 업계에서 '슈퍼을'로 불리지만, 이러한 영향력 때문에 오히려 사업은 쉽지 않다.

크리스토프 푸케 ASML 최고경영자(CEO)(사진출처=ASML 홈페이지)

크리스토프 푸케 ASML 최고경영자(CEO)(사진출처=ASML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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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세의 프랑스인인 푸케 CEO는 지난 4월 25일 ASML의 CEO로 취임했다. 직전 CEO인 피터 베닝크와 마흐텅 반덴브링크 최고기술책임자(CTO)의 뒤를 이어 4년 임기를 시작했다. 2020년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주요국의 반도체 패권 전쟁이 한층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줄타기해온 ASML의 수장 교체는 전 세계가 주목할 수밖에 없는 이슈였다.


물리학 석사 출신의 반도체 업계 베테랑인 푸케 CEO는 2008년 마케팅·제품 관리 담당자로 ASML에 입사한 뒤 2018년 EUV 기술 담당 부사장을 맡으며 ASML 이사회에 합류했다. 2022년에는 최고비즈니스책임자(CBO)를 맡았다. 이 무렵 베닝크 전 CEO 등으로부터 차기 CEO직을 제안받고 2년간 승계 작업을 진행해왔다.


수장 자리에 오른 푸케 CEO가 집중하고 있는 부분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일이다.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저지하려는 미국은 ASML의 첨단 장비가 중국으로 반입되지 못하도록 제한하려 노력하고 있다. 네덜란드 정부를 동원해 ASML의 중국 수출을 막는가 하면 대중 제한 조치를 통해 일정 기술 이상 장비는 중국에 판매하지 못하도록 하는 식이었다. ASML 입장에서는 대형 시장인 중국을 포기하는 건 매출에 타격을 주는 이슈다.

크리스토프 푸케 ASML CEO(사진 가운데)와 피터 베닝크 전 CEO(사진 오른쪽), 마흐텅 반덴브링크 최고기술책임자(CTO)의 모습(사진출처=푸케 CEO의 SNS)

크리스토프 푸케 ASML CEO(사진 가운데)와 피터 베닝크 전 CEO(사진 오른쪽), 마흐텅 반덴브링크 최고기술책임자(CTO)의 모습(사진출처=푸케 CEO의 S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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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케 CEO는 WSJ에 기술적으로 매우 복잡하고 정치와 결부되지 않도록 경계하면서 가급적 눈에 띄지 않길 바란다는 생각을 드러냈다.

그는 꽤 오랫동안 ASML이 장비 판매와 관련해 정치적인 문제로 인한 제약을 걱정해본 적이 없었는데 "갑작스럽게 전 세계에서 (지정학이) 가장 중요한 요인인 중 하나로 자리 잡아 버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치 입안자들이 중국에 대한 공포와 반도체 업계에 대한 이해 부족이 일부 잘못된 정책 결정으로 이어지고 있다면서 ASML의 기술과 제한 조치에 따른 발생 가능한 일 등을 정책 입안자에게 설명하는 방식으로 대응하려 한다고 덧붙였다.


푸케 CEO는 반도체 장비 관련 미국의 대중 제한 조치 등이 자칫 의도치 않은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중국의 최첨단 반도체 생산을 막기는커녕 ASML이 자사 장비가 중국 내부에서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 파악이 어려운 데다 중국 자체적으로 장비 개발을 부추기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제한 조치를 둘수록 사람들이 더욱 똘똘 뭉치게 유도하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푸케 CEO에게 던져진 또 다른 과제는 ASML의 차기 제품 개발이다. 당장은 EUV 장비를 바탕으로 반도체 장비 시장을 꽉 잡고 '슈퍼을'이라는 타이틀까지 쥐어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지만, 이를 계속해서 유지할 수 있느냐는 질문이 시장에서 스멀스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시몬 콜스 바클레이스 애널리스트는 "ASML이 현재 세계에서 가장 발전한 장비를 보유하고 있으나 '차기작은 무엇이냐'고 묻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달 웨이저자 TSMC CEO가 ASML의 네덜란드 본사를 방문했을 당시 크리스토프 푸케 ASML CEO가 안내한 뒤 기념사진 촬영을 하는 모습.(사진출처=푸케 CEO의 SNS)

지난달 웨이저자 TSMC CEO가 ASML의 네덜란드 본사를 방문했을 당시 크리스토프 푸케 ASML CEO가 안내한 뒤 기념사진 촬영을 하는 모습.(사진출처=푸케 CEO의 S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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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ASML이 판매 중인 신제품 하이NA EUV는 ASML이 독점 판매하는 제품이다. 2나노미터(㎚·1나노는 10억분의 1m) 이하의 반도체 생산을 위해 글로벌 반도체 제조 업체들이 도입하고자 욕심을 부리는 장비다. 하이NA EUV 장비는 한 대당 3억5000만유로로 기존 EUV 장비보다 두 배 이상 높은 것으로 전해진다.


인텔이 이 장비를 이미 한대 확보한 가운데 TSMC도 최근 이 제품을 매입키로 결정했다. TSMC는 기존에 이 장비가 너무 비싸다며 보유하고 있던 구세대인 EUV 장비로 2나노 제품 제작을 하겠다고 선언했지만, 웨이저자 TSMC 최고경영자(CEO)가 ASML 본사를 방문해 신제품에 대한 설명을 듣는 등 입장을 선회했다.


ASML은 하이NA EUV 장비 이후 하이퍼NA EUV 장비를 개발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푸케 CEO는 향후 수년간 고객사가 이 장비가 필요하지 않을 듯 보인다고 생각을 밝혔다. 당장 하이NA EUV 장비도 글로벌 반도체 업체들이 서로 확보하려 이제 막 경쟁을 시작한 상황에서 차세대 장비까지 가려면 수년은 더 시일이 걸릴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은 것이다.


이처럼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기업 ASML의 수장인 푸케 CEO는 여섯 아이의 아버지다. 그는 7개월 전 태어난 막내딸 육아 때문에 밤잠을 설치곤 한다고 WSJ에 밝히기도 했다. 가정적인 남편인 푸케 CEO는 2년 전 CEO직을 처음 제안받았을 때도 아내의 동의 없이는 절대 할 수 없다며 동의를 받은 뒤 CEO직을 수락했다고 한다.


한편, 최근 ASML은 유럽증시에서 프랑스 명품 브랜드 루이뷔통모에네시(LVMH)를 제치고 시총 2위에 등극했다. 유럽 증시에서 ASML보다 시총이 큰 기업은 비만 치료제 '위고비'로 유명한 덴마크 제약사 노보노디스크뿐이다.





정현진 기자 jhj48@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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